어느새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한때 꽃밭을 화려하게 했던 꽃가지들이 겨울을 보내자 말라 비틀어져 처량한 몰골로 찬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저분한 잎들을 떨구더니 살점들 다 발라지고 고갱이만 남아 초라한 생을 버티고 서있다.

잘라주어야지, 벼르다가 너무 늦었다. 이젠 다시올 새봄을 준비해야 할 시간, 새로 태어날 새 생명들을 위하여 땅을 비워줘야 할 시간이다.

날 잡아 잘라주기 시작했다. 으아리, 구름국화, 범부채, 백일홍, 천일홍, 비비추, 국화등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눈밭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꼿꼿하게 곳추세운 고갱이들을 잘라 빈 밭에 쌓아놓고 불을 붙이자 마른 꽃 타는 냄새가 마당 안을 온통 술렁이며 돌아다닌다. 향기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어쩐지 가슴 한켠이 쓸쓸해져 온다. 나의 마지막은 존엄함을 잃지 않고 고갱이도 하나 없이 온전하게 가벼이 떠날 수 있을까? 마른 꽃대 타는 내음과 연기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그리움 한 조각이라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잠시 슬프다.

봄빛이 명자나무 꽃가지 끝에서 발갛게 터지는 저녁 무렵, 지나간 시절 한 때 아름다웠던 마른 꽃대궁 타는 연기는 보랏빛과 묘한 내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늘 이렇게 처음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의 풋풋함을 언제까지 누리고 살수 있을까! 먼 어제와 오늘과 멀고도 가까운 내일의 아련함 속에 잠겼다가 문득 지독한 외로움 한 자락 다가와 잠시 슬퍼 눈이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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