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잠시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국내 뉴스를 살펴보면 연일 살충제 계란으로 떠들썩했다. 그러고 보니 달걀이 안 들어간 음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계란은 영양이 높다는 이유로 특히 건강을 생각하면서 챙겨 먹은 음식인데, 이럴 수가! 하지만 이제부터 계란 없는 김밥, 빵, 볶음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김밥에 정말 계란이 사라졌을까? 사실 한국에서 사먹을 수 있는 가장 싸고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인 김밥에 계란이 빠진다면 그 맛이 어떨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계란말이 김밥을 먹을 수 없다니!

 한국에 돌아온 후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 부근의 김밥 집에 들렀다. 단골아주머니가 김밥을 마시는 동안 각종 양념이 칸칸이 들어가 있는 반찬통을 세어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달걀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어 있었다. 오히려 예전보자 더 두툼한 모습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된 일이지?
 
 "이 김밥의 계란은 괜찮은가요?"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건 마치 횟집에 가서 "이 회는 싱싱한가요?"라고 묻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로 생각되어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입 먹어보았다. 역시, 계란이 들어간 김밥은 예상했던 흡족한 맛이었다. 계란의 살충제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계란 없는 김밥보다는 살충제가 약간(?) 첨가된 김밥을 선택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 같았다.

 그런 마음 한편에는 나만 이렇게 김밥에 들어간 달걀을 먹는 것은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먹는 것이니까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하는 집단 동질감에서 오는 안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전 무감각증 때문에 대형 사고들이 터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쉽게 먹는 것을 보면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잘 지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양계장 주인들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진드기는 자꾸 내성이 생기니 조금씩 강한 살충제를 뿌리지만, 설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건 보도 이후 많은 반응들은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일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내성 때문에 버티고 있지만, 어느 순간 금이 쫙 가면서 깨져버리는 유리처럼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친구간의 우정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 커지지 못하고, 나의 무심함과 둔한 반응으로 어느 순간 깨어져 버리는 두께로 얇아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니, 아주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연락 온 친구를 맞는 마음이 새삼 고맙고 반갑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