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이었다. 처서가 지나며 불어오는 바람결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린 여름의 흔적위로 가을빛이 사뿐히 내려와 앉는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가 가을바람을 따라 나선다. 높아진 하늘로 하얀 구름도 어디론지 둥실 떠간다. 나도 따라 걷는다. 흰 머리 결이 반짝이며 날리지만 어느덧 마음은 하얀 교복에 단발머리 단정하게 빗어 내리고 말똥구리가 굴러가는 모습에도 하하 호호 웃음 날리며 꿈을 키우던 날들을 쫒는다.

 그 시절엔 여리고 순진했던 기억으로 머물러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요즘의 소년소녀들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요즘은 태교를 해서인지 아기들이 참 야무지고 똑똑하고 예쁘다. 비바람 막아 곱고 바르게 잘 키우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잘못되기를 바랄까! 하지만 이제 막 수줍게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소녀들이, 그 가냘픈 어린소녀들이 흉기를 사용하는 극악한 수법으로 또래 친구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행을 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의심스럽기 까지 하다.

 아직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 빈번하다고 하니 무서운 세상이다. SNS에 올라 온 사건사진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은 참고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이제 학교조차 아이들을 편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가을빛이 아름답게 쏟아지는데 마음은 너무 슬프다. 자식들과 잘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안보이던 것들을 이제는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가면서 그들을 보듬고 다독이고 아우르며 가야한다. 가을빛은 그렇게 덜 여문 것을 더 여물게 해준다. 아가야! 우리 아가야 이 아름다운 가을빛에 더욱 성숙된 열매로 자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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