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 말은 그저 남녀 관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닌 듯하다. 자신이 관여된 일에는 너그럽지만 그러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을 표현한 대표적인 어휘가 아닐까? 얼마 전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재 연구기관에서 조직 개편이 있었고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연구원들이 집단 퇴직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책임을 맡고 있던 연구원을 비롯해 그 연구원의 중추역할을 했던 직원들이었던 터라 그 분야에 던져주는 충격은 컸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관조해 버리는 현실이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문화재보호와 개발이라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 어느 날 제도는 이들에게 석·박사 이상의 학벌을 요구하기도 하고, 실제 현장 조사의 일 수의 근거를 이유로 나름의 자정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문화재를 보호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지키며 젊은 날의 열정을 쏟은 그들에게 사십대 중반에 실업자라는 상처를 주고, 학자도 기술자도 아닌 부류를 낳는 결과를 갖고 왔다.

 맞다. 현대사회는 경쟁사회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낮에는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문화재 발굴 현장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밤에는 보고서 작업에, 휴일에는 학위를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살아남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집단 퇴직을 하게 된 이유를 전해 들으면서 마음이 뜨끈했다. 세상은, 인간은 참으로 모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저 문화재는 보호해야하고 지역의 원활한 개발을 위해 개미처럼 일한 그들에게 운영의 어려움과 경제적 현실을 이유로 희생을 요구하는 조직, 그것이 현실이다. 2005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만들어지면서 필자는 책임연구원으로 발탁되어 창단 멤버가 되었다. 지역에서 도가 출연한 연구원이 만들어지는 것에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그 여론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도록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으로의 허가를 불허했다.

 도기관 중에 가장 나중에 출범한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에 대한 반감은 그 반감을 넘어 새로운 제도도 만들어내었다. 협회에 가입을 해야 하고 조사원의 자격요건을 바꾸고 기관장까지의 자격도 제한하는 정말 보기 드문 혁신적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결국 제도에 묶인 사람들은 평생을 그 일에 몸담았던 자신들이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여론에 힘들었고, 내부적으로 경제 논리를 명분으로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그들 때문에도 힘들었다. 문화재를 활용하고 콘텐츠화하는 부서의 책임을 맡았다.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에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갔다. 문화유적 현상변경 기준 마련, 무형문화재 기록화, 헤이그협약에 따른 문화재 보호, 2012충청북도 민속문화의 해 사업. 문화재의 활용이라는 주제에 지역의 모델링을 제시했다고 자부한다.

 지금 경제 논리로 매사 발목을 잡았던 그들은 문화유산 활용을 앞장서 외치고, 혹은 본인이 선봉인 양 떠들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일개미는 일개미이고 여왕벌은 여왕벌이다. 이제는 솔직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 "당신의 불륜이 제게는 너무도 부러운 로맨스였어요" 이제는 용기 내어 고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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