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여중생들의 폭력 동영상을 보면서 무섭기도 하고 아이들이 가엽기도 하다. 어쩌다 저렇게 되도록 부모도 학교도 친구들도 방관해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주로 하는 말이 '우리 애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예전에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장난이었는지 고의였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지만 다른 아이가 밀어서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가해학생의 부모는 우리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말로 시작해서 끝까지 그 말을 주장하다가 갔다. 같이 아이를 기르는 입장이고 보면 원망을 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들은 놀다가 그런 거니까 말도 꺼내지 말라고 오히려 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그땐 그래도 조금 다친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내심 많이 놀랐고 걱정도 되었고 괘씸한 생각도 들었었다.

 피해학생의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도 고칠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고 부모에게도 평생 뽑히지 않는 가슴의 못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가해 학생도 그 부모의 말처럼 나쁜 아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이 몰려다니다보니 예비군 아저씨 같은 떼거리의 만용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예비군 오빠들은 참 휘파람을 잘 불었다. 소리도 잘 지르고 서넛이 줄지어 뚝방에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속에 옆집의 얌전하고 수줍음 많은 오빠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알아채고는 머쓱해서 뒤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는 군중의 힘, 즉 떼거리의 용기라는 것이 저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서는 절대로 용기를 낼 수 없는 일도 서넛이 모이면 거뜬한 법이다.

 가해학생들도 곁에 있는 친구들과 떼로 몰려다니며 객기와 같은 만용을 얻었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참으로 얌전하거나 소심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는 귀염을 독차지 하는 예쁜 딸일 수도 있고 가족 모두에게 소외당한 가엾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의 천성이 악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알고 있다. 그들에게 만용의 힘을 실어준 것은 동질의 무리일 것이다. 떼, 떼거지, 떼거리라는 단어의 힘이 여린 소녀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항간에서는 소년범들의 벌이 너무 가볍다고 한다. 더 큰 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방법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학창시절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엄마는 무조건 머리를 잘라서 집에 가뒀다. 그것이 내게 내려진 최고의 형량이었다. 머리가 자랄 때까지 부모를 원망했고 어느 정도 자라면 또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무조건의 용서와 무거운 처벌 중 어느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지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 엄마는 내 머리를 자르기 이전에 내가 뭘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 한마디 먼저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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