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유럽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관광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시내를 벗어날 무렵 경찰관들이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한다. 처음에는 금방 끝나겠지 했는데, 경찰관과 관광버스 운전기사의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차량운행기록장치인 타코메타를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타코메타는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차량의 운행 속도와 거리, 시간 등이 기록된 메모리카드란다. 유럽에서는 운전기사의 졸음방지와 안전운행을 위해 2시간 운행하면 15분, 4시간 운행하면 30분을 무조건 쉬게 하고 과속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관광버스의 타코메타를 출력해서 몇 달간의 운행기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금방 끝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 얼마간은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100만 원 정도의 과태료를 내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 되었다. 경찰관에게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초조한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남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유람선이 선착장을 출발하여 500여 미터 정도 갔을 때 회항하라는 연락이 왔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경찰관들이 배에 올라 탑승객의 인원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간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출항하면서 신고한 인원과 실제 탑승한 인원이 맞지 않아 단속에 걸렸는데, 종종 있는 일이고 곧 해결될 거란다. 출발하기 전에 점검할 일이지 이미 출항한 배를 회항시켜 점검하는 행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선주가 와서 해결하였고 30여분 지나 유람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발할 수 있었다. 이 곳 또한 관광객들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왠지 일의 해결은 빨랐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해수욕장에 갔을 때 일이다. 초저녁부터 음악소리와 폭죽소리로 바닷가는 휘청거리고 있었다. 밤 8시경 단속차량이 나타나 해수욕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면 위법으로 단속한다고 몇 차례 방송을 했다. 소음과 안전사고, 환경문제 등으로 해수욕장에서 폭죽을 터트려서는 안 된단다. 몇 번인가 안내방송을 한 차량은 이내 사라졌고, 잠시 조용하던 해수욕장에서는 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폭죽이 불야성을 이루었지만 단속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바닷가에 나갔더니 모래사장에는 폭죽의 잔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각국의 단속 행태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유럽 경찰들의 융통성 없는 단속 행태를 보면서 사후에 청문절차를 통해 사실 확인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면, 동남아의 단속행태는 왠지 그 절차나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가? 관광객들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못 본 척 피해주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지나친 배려가 법은 적당히 지켜도 된다는 사회 풍조를 조성하지는 않을까? 법규와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법이 있다면 지켜야 하는 것이고, 법이 잘 못 됐다면 고쳐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민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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