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하늘이 참으로 맑고 파랗다. 거기에 흰 구름마저 동동 떠 있다. 오늘 같은 하늘을 보면 종종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릴 적, 책상 위에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으면 막막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우선 노란색 크레파스를 꺼내 도화지 중간 쯤 위치에서 반원을 그린다. 그리고 나무 몇 그루, 풀, 꽃, 초가집, 기와집 섞어 마을을 그려 넣는다. 삼분의 일쯤 차지하는 파란색 하늘에 흰 구름 두어 점 동동 띄어 놓으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된다. 비로소 처음 막막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크레파스를 잡은 손가락이 신바람을 낸다. 손길 따라 알록달록 도화지가 물들어 간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라 하면 늘 펼쳐 놓던 풍경이다. 봄에는 꽃들이 더 많이 등장을 하고, 여름이면 무성한 나무, 가을산 단풍 등 계절따라 그림 속 풍경은 조금씩 달라져가도 하늘은 늘 가을, 한가지였다. 오늘처럼 맑고 파란…. 청량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을 햇볕을 받으며 진천읍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판화미술관으로 향했다. 걷기에는 조금 멀고 승용차로는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다. 도로 양 옆으로 누렇게 익어 가는 들녘이 평화로워 보인다. 차 창문을 조금 내리니 가을을 여물리고 있는 바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며 들어앉는다. 반갑고 기분 좋은 친구다.

 '단색판화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어느 어린이 집에서 온 꼬마 관람객 일행이 두 줄로 서서 큐레이터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들과 같이 설명을 들으려 슬그머니 꽁무니에 붙어서니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며 배꼽인사를 한다. 흑백 판화 전시물과 어우러져 있는 아이들 모습이 살아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하얗고 까만색으로만 되어 있는 작품에서도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요것조것 묻는 모습이 천진무구해 보인다. '나도 한때 저 만한 때가 있었지' 작품보다 아이들의 모습에 눈길이 더 가는 건, 잃어버리고 지내온 내 어린 날의 그리움 때문이리라.

 '단색판화' 작품의 깊이야 잘 모르지만 수묵담채화처럼 담백한 느낌이다. 어릴 때 접했던 판화로는 고무판화가 전부였다. 어른이 돼서도 판화는 흑백으로만 표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진천에 판화 전문 미술관이 생기면서부터 판화의 세계도 회화 못지않게 다양한 색상과 기법, 활용되는 재료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았다. 회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도 여럿 만났다.

 세상이 변해 가듯 판화의 세계도 다변화되어 가는 것에 익숙해질 즈음 접한 단색판화전은 오히려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흑과 백, 단순한 두 가지 색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인 심성일지 모른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상황에 따라 눈치 봐가며 적당히 타협하려는 어른들보다 '좋다', '싫다' 분명히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 마음이 훨씬 본성에 가깝지 않은가.

 모처럼 단색이 주는 순수함에 젖어본다. 미술관에서 만난 아이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을이 주는 메시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가을 산야도, 다 그들 내면에 담고 있는 자기 본연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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