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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리고 시 속의 사랑박기태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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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2  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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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건양대 교수] 추석 무렵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철이 들고 성년이 되었을 때 돌아가신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다. 독신으로 생활하는 나로서는 왠지 모를 외로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고해서일까 나에게는 추석연휴가 너무 길고도 긴 시간이었으며 혹독한 날들이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시에서 소읍으로 이사 왔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군 간부이면서도 가장 민간인다웠다는 평을 듣던 아버지는 언제나 온화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도 잘 하셔서 막내인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가르쳐 줄 정도로 자상하시고 훈훈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문학도 좋아하셨다. 시를 좋아하셔서 아버지의 책장에는 늘 시집이 많이 꽂혀 있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집을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그 유명한 시구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도 그때 알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애송하시던 낡고 낡은 시집들 속엔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인들부터 현대 시인들까지의 시도 총망라되어 있었다. 자주 애송하시고 좋아하시던 시구에 메모를 하셨던 모습이 떠올라 오늘 이 밤은 지독하게 아버지가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자주 읊으시던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1895-1952)」의 "우리는 둘이서"라는 시가 나의 빈 공간에 머무는 밤이다.

 엘뤼아르는 시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사랑의 힘이라고 노래했다. 아울러 사랑이 곧 믿음이란 것을 바로 그 사람이 유일한 증거라 강조한다. 한없이 경솔해지며 다정다감해지는 그 무엇이 바로 사랑이라면 하물며 상대방이 숨 쉬는 것까지도 함께해야 함을 암시한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결하고 고귀한 것이다. 흔히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일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자기의 존재가치도 상대방의 마음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떠나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주었을 때 진정 행복한 것이라고 청마는 일찍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한다고 할까마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토록 변하기 쉬워서 우리는 늘 좌절하거나 실망을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굳이 파스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갈대'인 우리에게 신의 사랑과 믿음 못지않게 잘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꼭 붙들라고 엘뤼아르는 하소연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한 이유로 아버지는 엘뤼아르의 시를 무척 좋아하셨다.

 다시는 아픈 사랑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계절만 돌아오면 깊은 사랑앓이에 마음을 저미고 사랑을 답습하는 게 우리의 삶인 것 같다. 그래서 올 가을엔 내 인생의 스승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내 아버지처럼 푸근하고 자상한 사람들과 만나서 고이 간직될 수 있는 그리고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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