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지난달에 베트남 서북부로 사진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모두 관광위주의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현장을 누비는 여행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하노이 공항에 내려 들로 산으로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 밖은 어둡고 숙소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지만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로 우린 모두 들떴다. 얼마 만에 바라보는 별빛인가! 그러나 기쁨도 잠시 컨테이너로 된 숙소는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가이드로부터 열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5박6일의 사진촬영은 시작되었다.

 이번 일정에서 제일 기대되는 것은 다락논의 촬영이다. 사진에서 보았던 다락논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저런 곳에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은 높은 산까지 이어진 다락 논! 보는 우리들은 아름답지만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까 싶다. 군데군데 낫으로 벼를 베는 농부들 옆에서 볏단을 손으로 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들 기억 속에나 남아있는 우리나라 60~70년대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소가 논을 갈고 길거리에는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닌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살짝 렌즈에 담았다. 급식시설도 없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형편이 안 돼 초등학교 아이들이 점심을 집으로 가서 먹는단다.

 베트남에는 54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을 렌즈에 담기 위해 전통시장에 갔다. 돼지고기를 좌판에 올려놓은 채 팔고, 오토바이 위에 닭을 묶어놓고 흥정을 한다. 대나무바구니에 담겨 있는 계란, 목줄에 매여 있는 강아지들, 모든 풍경이 평화롭고 한가해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싸한 바람이 인다. 공산품은 낫을 비롯한 농기구와 플라스틱 그릇이 전부라니 가히 짐작이 간다.

 필자의 눈으로 본 그들의 삶은 힘겹게 보였지만 그들의 표정은 아무 구김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에 필자의 멈춰버린 시간이 오버랩 된다. 방과 후에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논길을 걸어가면 논을 갈고 계신 아버지는 그제야 논둑에 내려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신다. 그 힘으로 아버지는 소를 몰아 논을 갈고, 논에 모를 심고 가꾸어 우리 식구들은 지키셨다.

 지금은 별미로 종종 먹는 국수가 그때는 왜 그리 싫었던지… 엄마는 많은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국수를 자주 했다. 국수가 남으면 그것은 다음날 아침 엄마의 끼니가 되었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맛있다며 뜨거운 국물을 부어 말아 드셨다. 그때는 불은 국수가 정말 맛있어 드시는 줄 알았다. 자식들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그랬다는 것을 철들고서야 알았다.

 60~70년대는 누구랄 것 없이 다들 가난했다. 점심을 고구마나 감자로 때우고 저녁엔 국수를 한 솥 끓여온 가족이 둘러앉아 후룩후룩 넘겼었다. 지금은 생활이 넉넉하고 풍족하다 해도 그 시절 보다 행복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번 사진여행에서 비록 작품이 될 만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오래전 멈춰버린 소중한 추억을 담아 올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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