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산자락을 붙잡고 아파트 빌딩숲을 그윽하게 넘겨다본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도시의 포도위엔 낙엽들이 바람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닌다. 자동차가 휙 지나간 뒤를 따라 쪼르르 굴러가는 낙엽들이 마치 어미 뒤를 따르는 논병아리들 같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볼 수 있는 지극히 낯익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는 해마다 다르다. 어제 떨어진 낙엽, 오늘, 그리고 지금 떨어지고 있는 낙엽 한 장이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낙엽 한 장조차 예사롭지 않다. 배우 김주혁의 갑작스런 비보 소식이 가슴을 텅 비워낸다. 그런 것들이 어제와 오늘이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시간, 어슴푸레한 골목길이 괜히 쓸쓸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홀연히 왔다가 다시 홀연히 돌아간다는 일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골목길 끝으로 서있는 한그루 느티나무 밑에 자전거 한 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작은 바퀴 두 개로 달려 온 시간들을 돌아보는가! 다시 달려가야 할 시간들을 생각 하는가! 나도 따라 나무에 등을 기대본다. 낙엽 그리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 둔 나무, 달리던 길 멈추고 서 있는 자전거, 나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영원 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는 하루살이의 꿈들을 위해 모두가 애를 쓴다.

 이제는 바람이 제법 차다. 활짝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아 야 할 시간이다. 안으로 도닥여야 하는 시간들이다. 떨어지는 낙 엽 한 장은 내일을 기약하는 약속이다. 내년 봄 파릇파릇하게 소생 할 꿈의 초석이다. 돌아보면 작은 것부터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림자마저 스러져가는 시간에 곱게 채색된 낙엽 한 장 주워들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포근한 가슴으로 서로 아끼고 다독이며 함께 할 때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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