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라면 나이 마흔 정도만 넘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게다. 점점 겨울에 눈(雪)이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 굳이 지난 수 십년 간의 데이터를 보지 않더라도 주위만 둘러봐도 겨울철 눈이 적다. 어렸을 때만해도 잦은 눈으로 동네 개울과 논에 물이 적지 않았다. 스케이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 마을에 있는 그 어떤 논이라도 썰매를 탈 수 있을 만큼 얼음이 많았다. 거기서 빙판 축구도 하고 불장난도 하고 그랬다. 겨울이 깊어지면 빙질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마을 어른들이 눈을 쓸어내 길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만큼 눈과 얼음이 많았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이번 설에는 충북 영동시장에서 명절의 부산함을 즐겼다. 명절만큼 부산함과 소란함이 유쾌할 때가 또 있을까? 마침 눈까지 흠뻑 내려 온 가족이 명절 기분에 제대로 젖어 봤다. 서설(瑞雪)이란 말이 그런 때를 두고 한 말 아닐까? 눈 때문에 고향 길 정체로 고생했을 귀성객들도 많았겠지만, 막히는 사이사이 악화된 기상을 원망했을지언정 하늘에서 내린 함박눈으로 어린 자식들에게 옛 명절의 풍성함과 놀이 문화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푼 가족도 적지 않으리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난 겨울에 비나 눈이 온 날은 예년의 절반, 강수량은 3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전국 17개 다목적 댐의 평균 저수율이 약 40%로 예년보다 약 10% 정도 낮은 것으로 보고한다. 이처럼 전국 다목적댐의 용수량이예년치를 크게 밑돈 것은 지난해 여름의 마른 장마에 이어 가을과 겨울에도 큰 눈이나 비가 적었기 때문이다.

겨울에 눈과 비가 적어지면 당장 우리 생활에 불편이 닥치게 된다. 요즘 낙동강 하류에서 일어나고 있는 식수난과 물 오염이 그 대표적인 불편함이다. 정부에서 긴급 식수공급을 위해 관정개발비와 수도시설 개선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해도 작은 불편함까지 해소할 수 없는 일. 게다가 건조한 날씨가 가져오는 산불은 불편함보다 재앙에 가깝다. 산림청 통계를 보자. 지난해 9-12월 발생한 산불은 112건으로 2007년의 무려 4.3배에 달하고 면적도 약 6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겨울 가뭄의 불똥은 농촌을 비켜가지 않는다. 예로부터 겨울에 눈이 많으면 이듬해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겨울의 기상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지금 남부지방에서 크고 있는 겨울 밀과 보리, 양파나 마늘 때문이기도 하지만 곧 들이닥칠 농사 준비를 위해서라면 많은 눈과 비가 필요하다.

마침 정부의 관계 부서에서는 저수지 준설 사업비나 한발 대비 용수 개발사업 등으로 적지 않은 자금과 인력 및 양수장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상청 주관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공강우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하니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물 부족이 매우 심각해 보인다. 언론에서도 물 부족에 대한 가정과 사회의 실천 기사로 시간과 지면을 자주 할애하고 있다. 절기로 보면 춘분 지난 지 몇 일 되었으니 이미 봄이다. 늦기 전에 상서(祥瑞)로운 눈이 아닌 비(雨)가 목마른 한반도를 흠뻑 적셨으면 좋겠다.

▲ 장석원 영동대학 바이오지역혁신센터 산학협력 전담교수ㆍ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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