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 “사과 속의 씨는 셀 수 있지만 씨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미래가 더욱 중요할 수도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가능성’,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가능성’은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미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81년 창업된 코닥은 한 때 전 세계 필름 시장을 주름잡았다. 그런데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은 새로운 개념의 사진기를 그의 상사에게 제안했는데, 새슨의 상사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새슨이 생각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바로 디지털 카메라였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의 가능성보다 눈에 보이는 필름시장에 집착하다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무너지고 말았다. 핀란드의 노키아 역시 한때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회사였다. 하지만 새롭게 변화된 스마트 폰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가능성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삶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과거에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있는 사람들이 미래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두 기업의 예에서 보듯이 과거의 성공이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을 간과하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번 큰 성공을 맛본 사람은 미래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그와 같은 성공을 이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성공도 실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오히려 이 가능성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젊은이의 과거는 아직 아무것도 이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젊은이는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 역시 이 가능성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만큼 자신의 미래는 오로지 가능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가능성이 반드시 젊은이들의 전유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가능성은 말 그대로 과거나 현재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나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바라보고자 한다면 그가 누구이던 이 가능성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새롭게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 실패의 경험을 위해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소비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가능성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미래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과거의 삶이 어떻하든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지금 내 나이가 얼마든, 과거 어떤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했든 그것이 미래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능성을 바라보고 사는 ‘젊은 날’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도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는 나이나 물질 같은 환경이 아니다. 오히려 내 환경 때문에 가능성을 포기하고 실패를 걱정하고 있는 내 마음인 것이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이 가능성뿐이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실패로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품는 마음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번 지나간 젊은 날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소망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또한 그 모든 날의 삶들이 젊은 날의 삶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