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편지를 부쳐 본 적이 언제였던가. 참 오랜만에 우체국에 와 본다. 시간의 흐름이 우체국을 건너 뛰어갈 리는 없을 터,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계단의 베고니아 화분도, 창가에 놓여있던 칸막이전화기도 흔적이 없다. 엽서를 사서 옆에 사람이 볼까봐 손으로 가리고 사연을 쓰던 구석진 자리의 창턱도 사라지고 환하고 밝은 햇살이 거침없이 쏟아져들어 온다.

우편물을 부치는 간간이 너른 창문을 바라본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 우체국에 와서 장거리 전화를 신청해 놓고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었다. 통화료가 아까워서 서둘러 용건을 말해야 하는데 늘 감이 멀고 상대방의 소리는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하던 그 칸막이 전화기는 어디로 갔을까.

그땐 칸막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남자친구와 낯 뜨거운 통화를 끝내고 황급히 돌아 나오던 간지러움도, 이별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훌쩍거리던 절망의 막막함도 칸막이가 가려주었으니 말이다. 20원이었던가, 40원이었던가, 엽서 한 장을 사서 제일 구석진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편지를 썼다. 시집에서 베껴온 시 한편을 정성을 다해 적어 넣고 예쁜 그림도 그려 넣고 틀린 글자는 없는지 비뚤어진 부분은 없는지 보고 또 보고 설레는 맘으로 우체통에 집어넣고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는 우표를 살 일도 전보지를 받을 일도 없이 집안에서 모든 용건을 해결한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휴대폰 하나가 이 커다란 우체국을 대신하는 셈이다. 혹시 글씨가 비뚤어질까 염려할 필요도 없고 멋있고 근사한 말을 찾아 쓸 필요도 없이 용건만 간단히 하면 된다.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은 시인이고 수필가라는데 지금은 별스런 이모티콘을 찾아 도배를 하는 기술자가 된 것 같다.

일본에 사는 오라버니에게 가끔씩 안부편지를 드리는데 그것도 이메일로 대신한다. 지금쯤이면 편지를 받았을까 궁금해 할 시간의 설렘도 사라졌다. 아무도 내게 침 발라 우표딱지를 붙인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책상위에 요금후납이라는 인쇄가 된 카드명세표와 고지서만 수북이 쌓여 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편지가 아닌 활자들만이 나를 찾아온다.

지금은 우표가 얼마인지 엽서가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거리 곳곳에 큰 덩치로 떡 버티고 서있던 빨간 우체통도, 한쪽 어깨가 기울도록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오던 우체부 아저씨도 본지 오래다. 대문 밖을 서성이며 우체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던 두근거림도, 파란 양철 대문에 녹슨 채 달려있던 편지통의 삐거덕거리는 소리도 사라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우체국에서 구식의 낡은 감상에 젖어 자꾸만 오래된 풍경을 추억하고 있다. 창구 건너편에서 팡팡 소인을 찍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우표 위에 정확히 소인을 찍던 우체국의 상징 같던 소리. 누런 마분지에 울퉁불퉁 끈으로 싼 멸치와 마른 고사리를 보내던 어머니의 꼬부라진 등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계단에 혹시라도 말라죽은 화분이라도 있을까 찾아보지만 바람만 서성이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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