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택 연세소아과원장·한국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

 

[김호택 연세소아과원장·한국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 사회적 문제를 숫자로 표현하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모호함이 사라지면서 명쾌하게 설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10월 말에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로타리연수회에 연수멤버로 참여하면서 개막부터 폐막까지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얘기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 세상에서 갈등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계산하면 15조$에 가깝고, 이 금액은 전 세계 인류가 벌어들이는 GDP의 14%가 넘는다’는 키타 세이지 로타리 재단이사장 대리의 스피치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갈등을 통해 잃어버리는 것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내 수입의 15% 정도라는 얘기이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말도 되겠지만 말이 쉽지, ‘갈등 해소’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갈등이 가끔 필요할 때도 있다. 갈등을 통해 문제점이 노출되고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책을 읽고 ‘힐링’한다고 하기에 나도 책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실망했다. 내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름값을 할 책이 아니었다. 결국은 ‘세상은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니? 네가 참아야지. 욕심과 생각을 내려 놓아야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겠니.’ 이런 얘기로 읽혔다.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어렵지만 더 기운을 내고 더 견뎌내는 힘을 키워 열 번 쓰러지면 열한 번 일어나는 기백을 갖추어라’ 이런 얘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내 앞을 가로막는 세상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운을 만들라고 충고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책의 내용이 내 첫 느낌과 같이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칠 전에 대둔산 부근 연인팬션에서 한유진 유성온천로타리클럽 회장이 회원 단합대회를 열겠다며 나를 초청해 주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대둔산 정상이 단풍 구경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라서 길이 엄청나게 막히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은 늦겠고,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어 먹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첫째, 내가 짜증낸다고 차가 빨리 달릴 리는 없다. 둘째, 좋은 곳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니 내가 가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가 서행을 하니 나도 차 안에서 대둔산 단풍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청년실업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소위 ‘공시족’의 숫자가 수십만명이라고 한다. 며칠 전 매스컴에서는 공무원에 합격해서 평생 다닐 수만 있다면 기업체 취직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두달 전에 형제간인 조카 두 명이 지방공무원과 검찰공무원에 각각 합격했더니 동네에서 사법고시 합격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이라며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렇지만 공시족 중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10%를 크게 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머지 수많은 공시족 젊은이들은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할 텐데, 이게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본래 시험이란 것이 0.5점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 이렇게 근소한 차로 떨어진 사람은 다음 시험을 포기할 수가 없다. 0.5점만 더 맞으면 되니까. 그렇지만 시험의 또 다른 속성은 그 0.5점 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둔산을 넘어오면서 막힌 길로 짜증나고 화 났을 때 단풍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지만 누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단풍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취직할 직장이 없다고 많은 젊은이들이 하소연하지만 정작 직장에서는 좋은 사람, 의욕적인 젊은이 찾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공무원 되어 시키는 일 하면서 평생을 보장받겠다는 마음보다 작은 직장이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이사, 사장 되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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