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만약에 가을걷이할 것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허전하고 을씨년스럽다. 다행히 필자의 집은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라서 소량이지만 대추와 감도 따며 수확의 기쁨을 아는 가을맞이를 할 수 있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청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지만, 어렸을 때 고향에서 살 때 그곳은 지대가 높고 북쪽이 트여서인지 감나무가 자라지 않았다. 가까스로 얼어 죽지 않은 나무도 감 대신 고욤이 열릴 뿐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마당이나 집 부근에 주렁주렁 감이 열려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객지의 학교로 다니며 근무하다 고향에서 근무하게 되어 한동안 살다가 30년 전쯤 청주로 이사하였다. 집을 보러 다니며 '아파트를 살까 주택을 살까?' 궁리 끝에 결국 주택을 사게 되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당시 건물은 오래된 집이었지만 마당이 넓어 사게 되었다. 이듬해 봄에는 감나무부터 심었다. 아마 어렸을 때 감나무 있는 집이 부러운 잠재의식으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산 것 같다.

상강(霜降)이 지났어도 무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감을 따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보며 나누는 이야기도 들렸다. 처음에 심었던 감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다보니 새로운 나무로 바뀌게 되었다. 육거리 시장에 가서 묘목을 사려니, "어른 주먹보다 더 큰 감이 달립니다."는 말에 큰 기대를 하며 사다 심었는데, 몇 년 후 의외로 단감이 달렸다. 당시는 단감은 남부지방에만 되는 줄 알았던 귀한 단감이고 그리 굵지 않았지만 당도가 높아 맛이 좋으니, 그 나무를 판 사람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품종을 정확히 알고 팔아야 했는데…….

감 따기는 무척 어려운 작업이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교훈도 일러준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집중하여 하나씩 간짓대의 틈에 끼워 따다 보면 떨어뜨려 깨지곤 한다. 철물점에서 파는 새로운 기구를 이용하면 좀 더 손쉽게 딸 수 있다는데, 쓸 때만 생각나니 아무래도 준비성이 부족한가 보다. 한두 번 농약을 뿌렸어도 희끗희끗하고 우툴두툴한 감도 있다. 감나무 약값도 꽤 많이 들기에 무심코 "약값만큼 감을 사면 실컷 먹겠네요."하니 농약방 주인은 "그래도 주렁주렁 달린 감을 보는 재미도 있잖아요."하던 말도 생각났다. 농약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재배하여 수확하는 감과 농작물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감나무, 대추나무, 들깨, 콩 같은 작물에 농약을 하지 않아도 잘만 되었는데, 요즘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것 같다. 유기농, 친환경, 무공해 농법이 좋은 줄은 알지만 겪어본 사람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  또한, 장석주 시인이 읊은 '대추 한 알'처럼 한 개의 감도 저절로 익어가고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속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주인의 땀과 사랑 등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들어있다는 생각에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 잘 보호하고 상생하여야 한다는 것을 감을 따면서 되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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