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마당을 무대로 꾸며 놓았다. 객석은 층층이 앉을 수 있는 계단이다. 마음 내키는 자리에 앉았다. 젊은 부부와 서 너 살 박이 꼬마가 옆자리에 앉는다. 꼬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만화영화의 주인공 흉내를 낸다. 공연을 즐기기는 애시당초 글렀구나 싶었지만 자리를 옮길 수는 없었다. 아이엄마는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분위기가 한 참 무르익을 즈음, 사회자가 객석을 둘로 나누어 A팀과 B팀으로 부른다. 팀 이름을 지어 주겠다며 내가 있는 쪽을 희망 팀, 상대 쪽을 절망 팀이라 한다. 그러자 신기한일이 벌어진다. 희망 팀은 박수소리도 요란하고 응원가도 목이 터져라 부른다. 반면 절망 팀의 박수소리는 비 맞은 생쥐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수차례 반복했지만 그럴수록 희망과 절망의 뜻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무대를 내릴 즈음, 두 팀이 마음을 모아 소망 풍선을 하늘로 날린다. 알록달록 아이들의 꿈처럼 고운 색의 풍선이 가을 하늘을 수놓는다. 무대에 섰던 공연자들과 객석에 앉아 열정을 다해 박수를 쳤던 이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던 이의 염원을 담아 풍선은 하늘로 떠나간다. 내가 그러하듯이 그들도 긍정의 삶을 약속했으리라.

공연 내내 옆자리에서 풍선으로 시야를 가리고 넉살좋게 치대기도 했던 꼬마가 엄마 품에 안겨 쌔근댄다. 요란한 악기소리도 자장가로 들리나 보다. 소프라노와 재즈가수 그리고 국악팀에게 환호를 하던 내가 소리를 낮춘다. 온전히 꼬마의 숙면을 위해서다. 조금은 귀찮고 성가신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추억은 아이들로 인한 기쁨이 넘치던 찬란한 빛이다. 긍정의 힘은 불편했던 관계마저도 좋은 인연으로 이끌어 내나보다.

잠에서 깬 꼬마가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소망을 담은 풍선처럼 고운 미소다. 작은 음악회에서 삶에 대한 자세를 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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