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지난 주말에 우리 학과의 학술제가 있었다. 저녁에 행사가 끝나고 내빈으로 왔던 일본 자매대학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다양한 요리를 조금씩 즐길 수 있는 한정식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학생들이 노래를 잘 불렀네, 연기가 좀 아쉬웠네 하면서 그날 행사를 돌이키며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을 때 “이게 도대체 뭡니까?”, 일본 손님이 물었다. 홍어회였다.

먹기도 전에 식탁 위에서 괴상한 냄새를 풍기며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것.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삭힌 홍어회는 음식이라기보다 입안에서 펑펑 터지는 폭탄과 같은 위협적인 ‘물체’이다.

그런데 한참 동안 망설이다 홍어를 입에 넣은 그 사람에게서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어 이것 맛있는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가 나고 자란 시가현(滋賀縣) 지역에서는 해마다 붕어를 잡아다 항아리에 담아 삭혀서 먹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고향음식과 맛이 비슷했으니 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다.

시가현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사이에 두고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와 맞닿아 있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琵琶湖) 주변에 넓게 평야가 펼쳐지는 풍요로운 농업지대이다. 그 일대에는 고대로부터 백제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백제가 멸망한 것은 660년. 이어서 663년 백제의 잔존세력과 왜의 지원군으로 구성된 부흥군이 백촌강(白村江) 전투에서 패망하자 엄청난 수의 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면 665년에 400여명, 669년에는 700여명의 백제인들이 각각 오미국(近江國, 지금의 시가현)에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수 동쪽에 위치한 히노마치(日野町) 마을에는 귀실신사(鬼室神社)라는 신사가 있는데 거기에 신으로 모셔진 귀실집사(鬼室集斯)는 백제부흥군의 수장 귀실복신(鬼室福信)의 일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생선을 발효시켜 보관하는 음식은 ‘자(鮓)’라 하여 동남아, 한국, 중국, 일본 등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나레즈시(熟れ鮨)’라고 부르며 그 대표격이 시가현의 ‘후나즈시(鮒鮨)’, 즉 삭힌 붕어 요리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일본과 가장 많은 교류를 했던 나라는 백제였다. 앞선 농업기술과 함께 고도의 발효기술이 대부분 백제로부터 전해졌다. 일본에서 술을 ‘사케’라고 하는 것도 ‘삭혀’라는 한국어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다가 멀어 홍어가 붕어로 바뀌었지만 1300년이 지난 지금도 시가현에 정착한 백제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전통을 간직하며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음식은 문화고 문화는 혼(魂)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음식의 맛과 그것을 짓고 먹고 살면서 느꼈던 감정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침전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간다. 홍어회와 후나즈시, 세상의 흥망성쇠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세대를 면면히 계승해온 두 나라의 전통발효음식. 깊어지는 가을밤에 맛과 맛으로 맺어진 오래된 인연을 더듬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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