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변호사

[이영란 변호사]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김장쓰레기를 무상 수거한다는 공고문을 보았다. 김장철이 시작됐다. 생각해보니 우리 어머니 세대의 월동 준비 중 제일 첫 번째 과제는 김장이었던 것 같다. 가을 무렵부터 젓갈을 준비하고, 건고추의 꼭지를 따고 정성스레 닦아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빻아 두는 등 사전작업의 양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온 가족은 물론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동원되어 김장을 하느라 바빴다. 어린 시절 추억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김장 풍경은 엄청난 양의 배추를 절이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양념을 버무리는 날이면 집안에 가득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다. 지금은 추억이 돼버린 풍경이지만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었다.

 요즘은 김장을 하더라도 많이 하지도 않을 뿐더러 김장김치만으로도 1년을 먹는다고 할 만큼 김치 소비도 줄어들었고,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김장 자체를 하지 않는 집도 많아졌다. 그런데도 김장철만 되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째서 '김장'이 또 하나의 '명절'같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것일까? 아마도 '명절'과 똑같은 이유일 것이다.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누리기만 하는 구조에 대하여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누구는 허리가 끊어져라 김치를 담고, 누구는 그저 김치통만 들고 와 담가놓은 김치를 담아가기만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모두가 완벽하게 공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있기에 맛있는 김장김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하며, 그 수고에 대하여는 적절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정말 고생했다,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등의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건, 물질적 대가이건 간에 말이다. 누군가의 호의가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불편한 관계가 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겨우내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김장을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쌓인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월동준비를 하는 것이 맞는지.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갈라서겠노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들과 딸인 동시에 누군가의 며느리와 사위이고, 시누이이자 올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더해졌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아주 가끔이라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최고의 월동준비가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