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아침 해가 밝게 솟아오르고 하늘이 높고 푸르던 날, 한가한 마음으로 정원의 감을 따기로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아파트로 이사한지 8년째를 맞는다. 붉고 소담스런 홍시를 따다보니 노계(蘆溪) 박인로의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가 아니라도 품음직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이 시는 박인로가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홍시 대접을 받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회귤고사(懷橘故事)를 인용하여 지은 시이다.

 오(吳)의 육적이 여섯 살 때 원술의 집에 찾아가자 귤 대접을 받고 그 중에 세 개를 몰래 품에 품었는데, 하직 인사를 할 때, 그것이 굴러 나와 발각되었다. 원술이 그 까닭을 물으니, 집에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드리려 했다 하니 모두 그 효심에 감동했다는 일화가 회귤고사이다.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인생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라고도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슬픔 속에 어머님을 작별해야했다.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을 때, 하루는 북어찜을 찾으셨다. 다른 음식은 마다하셨는데 북어찜을 맛있게 잡수셨다. 북어찜을 보게 되면 어머님 생각에 목이 메이고 살아 계셨을 때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가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가슴을 치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체격이 건장하셨다. 모시고 식당엘 가면 식사를 잘 하셨다. 15년 전만 해도 성묘를 가실 때면 앞서서 올라 가셨는데 몇 년 후에는 오르시며 힘들어 하시고 식당에 모시고 가면 반도 잡수시지 못하심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는데 11년 전에 떠나셨다. 얼마 전 고향집엘 들렸다.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셨던 어머님, 금방이라도 나오시며 반색하시며 아들의 손을 잡아 주실 듯 했지만, 텅 빈 옛집엔 낯선 사람들이 오가며 푸르던 대추나무는 돌보는 이 없이 고목이 되어 우리를 맞는다. 덧없는 게 세월이요 기약 없는 인생살이, 건강한 모습으로 마무리를 잘하도록 생활할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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