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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정창준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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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3.23  23: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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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준교수
오늘도 한 젊은 여성 연예인의 죽음에 관한 뉴스가 현재진행형으로 보도된다. 뉴스란 것이 본래 새롭고 신기하거나 관심을 끌만한 소재들로 채워지는 것이어서, 아침부터 종일 저녁까지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세상이 시끄러울까 하고 습관적으로 온라인 신문의 헤드라인을 검색해 본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 사고가 일어나서 신문지면을 장식하며,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있을 때면 그것이 비정상으로 혼돈되는 일도 있게 된다.

요즘 이 여성연예인이 남긴 뉴스거리는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 거리가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고, 조속히 명백한 조사로써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 원혼이라도 고이 달래주어야 할 듯 싶다. 최근 몇 년간 연예인의 죽음에 관한 기억이 드문드문 이어져 왔지만, 이번 경우는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 또는 원인을 두고 보았을 때 결론이 난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것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두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학설들 중 개인적인 또는 심리적인 입장에서 보는 견해와 사회적으로 확장해서 보는 입장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우선 동정하는 측면에서 개인적인 상황에서 보게 되는데, 얼마나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였기에 그렇게 최후의 방법을 꼭 선택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고,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이 주장한 것으로 자살은 개인적인 동기보다는 죽음에 이르게 한 당사자의 사회적인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이른바 사회적인 동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계속 이어져 나오는 뉴스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 동정심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동물적 추악성만을 가진 몇몇 인간이 나약한 새끼들만 집중 공격하여 배를 채우는 들짐승 하이에나처럼 보호자 없이 홀로 살아가는 부모 잃은 가녀린 삶을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것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이런 나쁜 폐단은 법으로 엄정히 심판 받도록 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 사망률에서도 10만명당 24.0명으로 2003년 이후 5년 연속 자살율 1위를 기록하였으며, 20대와 30대의 경우 사망원인 1위로 나타 충격을 주었었다. 이제 이런 일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너무도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가 개인주의적인 삶 속에서 고립되고, 힘들어하는 가운데에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 관심들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 필요이상으로 보도되는 경향으로 부정적인 파급효과도 우려 된다. 이번 사건은 죽음으로 이르게 한 동기가 외부적인 요인들로 속속 추정단서가 드러나고 있는바, 이른바 베르테르효과처럼 모방되는 사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개인적인 이유이든 사회적인 이유이든 극단적인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두 앞서서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를 사회적인 그물망 속에 엮어 넣어 정신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는 존재론적 사회참여가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려 감싸 안아 보자.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지금, 긴 터널을 지날 때 까지 모두가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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