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쉬이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성품 탓에 겨울이 성큼 다가와서야 올 가을도 단풍구경은 TV에서나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작은 도서관의 가을맞이 나들이가 있었다. 틈틈이 음악회를 다녀오기도 했고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했으니 그런대로 가을을 즐겼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을 그저 보내기는 서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일요일, 게으름을 마음껏 피우며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우연히 창밖을 보니 단풍나무가 빙그레 웃고 있다. 나도 바람을 즐겨볼 요량으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햇볕은 따스한데 바람이 불어 긴 머플러가 거칠게 나부낀다. 모퉁이를 돌자 아직 떠나지 않은 가을이 여기 있다. 낙엽이 되지 않은 단풍의 향연, 바람도 잔잔해진다.

 어둠이 가시기전 출근하고 어둠이 내리고서야 퇴근하여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엄밀히 말하면 저층에 사는 나의 개인 정원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넓은 길에서부터 작은 오솔길과 휴가 중인 분수대까지 천천히 걸으며 늦가을을 가슴에 담았다. 그 순간만큼은 어수선한 일터는 안중에도 없는 듯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보내주는 풍경이 휴대전화에 안착을 한다. 사진작가인 듯이 참으로 아름답게 담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아담한 정원인 나의 왕국 또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떠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토닥여 준다. 일터의 창을 가득 채웠던 은행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드니 말이다. 삶에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가치도 달라지나 보다. 남들처럼 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아슬하게 나부끼는 얼마 남지 않은 단풍을 보며 걸어가야 할 길을 어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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