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소원이 무엇이냐고 동료가 묻는다. 가족의 건강과 나의 글쓰기가 일취월장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그런대로 평범하게 살아 온 사람의 범주 안에 드나보다. 이번엔 내가 동료에게 소원을 묻는다. 바다를 건너 올 만큼 진취적인 그녀 또한 가족의 건강이란다.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는 것은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의 공통된 소원 중에 하나인가 보다.

 절실한 소원을 갖은 이웃이 떠오른다.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광고 문구 같기도 하고 서비스 센터의 상냥한 인사법과 다름없는 이 말을 눈이 마주 칠 때마다 하는 중년의 여인이 있다. 앞선 어머니의 뒤를 따르며 쉼 없이 인사를 하는 그녀가 보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지체장애가 있는 어린 딸의 손을 놓친 어머니가 사십 여년이 흐른 후 딸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두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딸이더란다. 서너 살 박이 딸이 마흔을 넘겨 만났으니 미안함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없는 형편이지만 그동안 못했던 먹이고 입히는 재미로 행복에 겨운 날들을 보냈단다.

 달큰한 오수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혼자 남게 될 딸을 걱정하게 되더란다. 하여 좋다는 말만 들으면 약초효소를 만들어 집안 한쪽을 가득 채우게 되었단다. 그리고 먼 훗날을 위해 딸이 혼자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단다.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어디든지 동행하며 수없이 반복한단다. 사연을 들으니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후 어색하지만 인사를 받으면 정답게 답해준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오래 사는 것이 소원이란다. 정확히 말해서 장애가 있는 딸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란다. 신이 주신 선물로 여긴 딸을 잃어버렸을 때는 단 하루도 편히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며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을 테고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잠을 자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을 어머니의 '소원'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라니 같은 어미로서 공감이 가는 만큼 아프게 느껴진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딸을 혼자 남겨 놓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두려우리라. 그래선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요, 세계 평화라는 말보다 그 어머니의 소원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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