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생각한 바를 완전하게 이룬다는 것은 신(神)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3분의 1쯤은 이루고 3분의 1쯤은 이루지 못하고 3분의 1쯤은 이룬 것도 아니고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닌 상태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다."

 외국의 어느 무장이 타국 정벌에서 세운 공으로 엄청난 녹지(綠地)를 하사 받는다. 지금까지의 12만석에서 일약 70만석으로 뛰어 오른 것이다. 이 비약적인 증봉(增封)을 받은 직후, 장군은 난간에 기대어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는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가신(家臣)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묻는다. "이번에 큰 상을 받았으므로 감격해서 울고 계시는지요?" 그러나 장군은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 설령 녹지가 적더라도 서울 가까이 있다면 천하의 돌아감에 희망을 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틀렸다. 녹지가 많다고 해서 무엇에 쓸 것인가. 그 일을 생각 하노라면 이렇게 눈물이 나온다."

 이렇게 인간이란 욕망의 덩어리와도 같은 것, 하나가 있으면 열을 갖고 싶고 열이 있으면 백을 갖고 싶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영웅, 명장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기의 목표를 쉽사리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무력감, 좌절감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어느 재벌의 창업자가 자기 인생의 종말을 고할 때 "나는 생각했던 것의 반도 이루지 못했다."고 탄식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승리자, 성공자라 하더라도 그 명성, 그 업적의 그늘에는 이러한 좌절과 실의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범인의 경우에야. 수없이 설계가 무너지고 계획이 빗나간다. 그래서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것이 우리들 인간의 모습이다.

 생각한 바를 그대로 실현한다는 것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자기가 생각한 바의 반이라도 이룬다면 그 성적은 아주 좋은 편이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파도 목표가 있음으로 해서 그는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 동안에 바친 땀과 정성이 있고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항상 오늘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지금 그래도 남아 있는 그 결과가 자기의 '구원'이 되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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