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청주의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을 본 듯하다. 형식과 격식을 깬 듯하면서 자연스럽게 콘텐츠들이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청주시와 월드컬처오픈이 공동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충북도가 후원하는 '2017세계문화대회(Better Together)'가 11월10일~12일까지 옛 청주연초제조창 일원에서 열렸다. 세계문화대회는 예술, 인문, 과학,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과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공익활동가들이 모여 열정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장이다.

 르완다 대학살의 아픔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는 월드뮤지션 장 폴 삼푸투(르완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여성·아동인권운동가인 카디자 알살라미(예멘), RoMeLo 연구소장 데니스홍 박사(미국), '미움 받을 용기'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일본), 뉴욕 타임스퀘어 아트 공공미술 디렉터 데브라 시몬(미국) 등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가슴 떨리는 대목이다. 그들과 한 공간에서 한명의 컬처디자이너로 참여 한다는 것이 영광이다. 청주 안덕벌의 사연을 담은 600여명이 함께하는 오프닝 저녁 만찬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음식이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음을 누차 강조하고 충북음식역사문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즐거운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단숨에 기획에 들어갔다. 50여개 나라 컬처디자이너 600여명에게 청주 안덕벌의 애달픈 역사를 어떻게 담아 낼 것인가? 바로 안덕벌 콩한상이다.

 안덕벌 콩한상에 담긴 사연은 6.25전쟁 발발 직후, 군경이 예비검속 차원에서 진행한 '보도연맹'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경은 좌익분자들을 처분한다며 내덕 1·2·3구에서 민간인 153명을 학살했고 그 중 안덕벌 주민이 50여명에 달했다. '안덕벌 떼과부' 라는 말을 만든 이 사건으로 인해 여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콩나물을 기르고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된다. 그들에게 콩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이며 역사인 것이다.

 필자가 '안덕벌 콩한상 도시락'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장 흔한 식재료지만 가볍지 않은, 당시 여인들의 삶의 무게를 정성스럽게, 아름답게 담아내어 소통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조리법과 맛, 색을 어우러지게 담아 그녀들에게 정중하게 올리고 싶었다. 먹는 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맛'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었고 삶의 목적이었으며, 역사 그 자체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어 사라지는, 가장 1차원적인 무형의 것이기에 음식이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는 것을, 혹은 역사·문화 속에서 음식을 설명해 내어야 한다는 것에 무심했는지도 모른다. 음식으로 과거와 소통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면서 미래를 계획한다. 이야기가 있는 안덕벌 콩한상이 골목을 지키는 순정남과 동네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멋진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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