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한 불법 시위자들에게 청구한 구상권 소송을 철회한 결정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구상권 취하는 법원이 낸 강제조정안을 수용하는 형태였으나, 이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당시 문 후보는 구상권 철회와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이를 기정사실화 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이를 발표한 이후 각 언론에선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일각에선 국민통합론을 내세운 정부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했지만 법의 정의를 외면한 어용 논리에 불과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장관을 출석시켜 경위를 물었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사법부의 의견을 존중해 정부가 갈등 해결과 국민통합을 위한 대승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총리의 발표 내용을 되풀이했다. 정권의 핵심에서 추진하는 것을 주무 장관에게 반대를 주문할 바는 아니지만, 사안의 중대성과 그간 국방부가 취해온 입장에 비춰보면 너무나 무기력한 답변이다.

해군이 시공사에게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손해로 배상해준 수백 억은 무기도입 예산에서 헐어낸 돈이다. 불법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군이 먼저 보상해주고 추후 원인 제공자에게 그 돈을 받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해군이 지난해 3월 불법시위를 주도한 개인 116명과 시민단체 5개에 대해 배상금액의 일부인 34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구상권 청구소송을 낸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대응이었다.

더구나 청구 대상자 가운데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 주민은 31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외부인이다. 공사를 방해하고 불법 시위를 주도한 단체와 개인들은 대부분 용산미군기지 건설, 사드(THAAD) 배치 현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행렬 등에 쫒아다니며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관련 사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해온 전문 시위꾼들이다.

그런데도 불법과 폭력을 일삼고 정부 재정에 큰 손실을 끼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인은 당선을 위해 온갖 공약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해당 부처가 당연히 해야하고, 진행중인 소송을 거둬들인 것은 그 부처의 존재가치를 무너뜨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정부의 구상권 취하 결정에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심지어 보수 성향인 바른정당 제주도당까지 일제히 "구상권 철회가 갈등 반목의 종지부를 찍고, 공동체 회복, 국민화합의 계기가 된다"고 환영하고 나섰다.

과연 불법시위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철회한 것이 국민통합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법을 어기고 정당한 공권력을 방해하고, 군경에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준 것 아닌가. 범법자에 대한 손해배상마저 포기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전 정권의 불법행위를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대대적 처벌을 하고 있는 현 정권이 불법시위자들을 용서한다면 새로운 적폐를 양산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념과 지지성향 등 법 외적인 이유로 법의 정의를 외면하면서 어떻게 적폐청산 명분을 가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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