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미국의 저명한 문화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도시를 기능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도시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 문화의 창조, 전달, 저장에 있다며 시민의 생활문화가 쇠퇴할 때 도시도 쇠퇴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도시학자 피터 홀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도시를 분석한 뒤 창조성을 도시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웅변했다.

 본래 문화(culture)의 어언은 농업의 "경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자연성을 기반으로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고 수확하는 과정이 문화라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는 알곡진 결실을 맺기 위한 열정과 지혜와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때로는 아픔과 시련과 고난도 뒤따른다. 더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며 도시의 구성원들끼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도시든 역사든 경작의 과정이 곧 삶이요 문화가 아니던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유네스코의 창조도시고 유럽의 문화수도며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문화도시다. 창조도시는 디자인, 영상, 음식, 미디어 등 독창적인 콘텐츠로 특성화하며 도시발전을 이끌고 있는 지역을 선정하는 사업이다. 200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창조도시는 2004년 출범 이후 지구촌에 180개 도시에 이른다. 전통의 가치를 계승하며 창조적 역량으로 도시를 재건한 곳도 있고, 도시의 공간에 문화라는 옷을 입혀 특화시킨 곳도 있다. 영상이나 미디어처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도시의 희망이 된 곳도 있다.

 유럽의 문화수도는 수많은 유럽의 도시를 하나 되게 하는 값진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와 지역의 중요성이 확산될수록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만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다양성 속의 통합'을 위해 선택한 사업이다. 볼로냐대학의 교수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청년이여, 도시여, 약동하라. 창조하라. 함께하라"며 문화수도 사업에 불을 지폈다. 풀뿌리 문화에서부터 다채로운 예술프로젝트, 문화적 도시재건에 이르기까지 문화수도로 선정된 도시는 시민화합, 도시발전, 관광산업, 경제성장 등의 눈에 뛰는 결실로 이어졌다.

 여기에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도 주목할 일이다. 한중일 3국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문화적으로 서로가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왔다. 그렇지만 전쟁과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가 깊은 것도 현실이다. 이를 문화로 치유하고 예술로 하나 되며 새로운 미래를 열자는 취지로 2014년부터 매년 국가별로 문화도시를 선정하고 있다. 청주시는 2015년에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생명문화도시를 선포하고 젓가락페스티벌 등 지구촌이 공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유네스코 창조도시, 유럽의 문화도시, 그리고 동아시아문화도시…. 이름은 달라도 추구하는 방향은 하나다. 문화로 행복한 세상, 문화로 서로의 꿈을 일구고 값진 성찬을 즐기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청주시는 문화도시로 가는 기로에 서 있다. 당장의 성과와 이벤트가 아니라 100년 꿈을 담는 일에 시민사회의 지혜와 열정이 함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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