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돌아왔다. 성탄절은 예수를 알던 모르던, 누구에게나 즐거운 날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사실 성탄과 기쁨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촌형으로서 예수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의 역할은 이스라엘이 열망하는 메시아의 오심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이후에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 그가 정말 자신이 기다려온 진정한 메시아가 맞는지 확인하도록 한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가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묻는다. 이에 예수는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 돼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보면 예수가 생각한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메시아는 세상의 낮고 천한 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펴 주는 자이다. 이는 단순히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치료는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들을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회복시켜주는 치료이다.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아픈 딸을 치료해 주러 가는 길에 한 여인이 몰래 예수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만졌다. 이는 그 옷에 손만 대어도 자신의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예수의 옷을 만졌을 때 그녀의 병이 치료되었다.

 그 순간 예수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사람들은 지금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곁을 따르고 있는데 누가 그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찾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옷에 손을 대고 기적을 체험한 자가 이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두려워하며 자신이 그랬다고 대답했다. 예수는 그 여인을 주목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여인이 치료받아 구원되었음을 선포했다.

 그녀를 괴롭히던 혈루증은 그녀를 부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는 병의 치료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다시 완전히 정한 사람이 되어야만 유대 사회의 일원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만약 그녀가 병을 치료받아도 자신이 다시 정결한 상태가 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녀는 계속해서 유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의 옷을 만지고 병을 치료받은 사람을 찾음으로써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해 주었다.

 예수가 생각한 메시아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으로 그들도 치료받고 회복되어 다시 이 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탄절은 이와 같은 복음이 시작되는 날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세상에 버림받지 않고 그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이 먼 자도 걷지 못하는 자도 나병에 걸린 자도 모두 다 우리의 일원인 것이다. 예수를 통해 이 놀라운 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우리가 성탄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복음 때문이다. 세상의 낮고 천한 자들이 질병을 치료받고 문제를 해결 받아 다시 우리와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성탄은 이와 같은 성탄의 참된 의미를 기억함으로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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