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세상은 어둠과 빛으로 만들어졌다. 어둠속에서 모든 생명이 잉태되고 빛을 통해 성장하며 꽃을 피운다. 빛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꿈을 빚고 다듬고 스미며 아름답고 소중한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씩 사위어 가며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자연의 섭리다.

 새해 아침, 어둠을 뚫고 미동산수목원 정상을 오른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의 세계, 불안과 긴장과 설렘을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둠속에서도 자연은 빛난다. 하늘의 별과 달이 길벗이 되었다. 찬바람에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마른 자작나무는 선연하다. 소나무 숲의 맑고 향기로운 기운도 끼쳐온다.

 자연은 처녀성을 갖고 있다. 두근두근 심장을 뛰게 하고 따듯한 미소와 에너지로 환원시켜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묵상하게 한다. 자연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의 문이 하나씩 열릴 때 우리의 마음도 열린다. 자연 속에서 각다분한 내 마음을 다듬는다. 새로운 성장통을 허락한다. 그래서 최고의 예술은 자연이다. 예술을 하는 행위는 곧 자연을 닮아가는 행위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치유토록 하고 유순하게 하며 맑고 향기로운 삶을 허락한다.

 정상에 오르니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하다. 하늘과 땅과 대자연의 풍광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안개가 짙어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없지만 그 기운은 이미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태양이 알을 낳는 동안 대지는 얼마나 뒤척였을까. 바람은 지구 어디쯤에 보금자리를 만들까. 자연은 가난한 자에게 축복이고 빛이고 거름이다. 하산하자마자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 향했다. 새롭게 단장했다 하니 그 속살이 궁금했다. 금속활자본 직지는 고려시대 최고의 정보혁명임을 웅변한다. 정확하고 빠르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려는 시대의 요청이 있었다. 옛 사람들의 삶의 지혜와 자연의 섭리와 성인들의 주옥같은 메시지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골목길은 삶의 여백이 있다. 정감 넘치고 옛 추억이 깃들어 있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빛을 낸다. 청주의 골목길은 아직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곳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값지고 애틋하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스토리로 가득하다. 살아있는 전설이다. 신선이 마셨다는 신선주도 골목길의 오래된 한옥집에서 빚고 있다. 장작불로 고두밥을 짓고 누룩과 수많은 약재를 넣었으니 마시면 신선이 된다. 그 간절함으로 올 한해를 살아야겠다.

 최고의 자연은, 위대한 예술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간절함이 깊어야 한다. 열정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피를 토하는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물 깁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지 않던가. 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고 했다. 최고의 날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비장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오라, 새 날이여. 숨 쉬는 대지여. 내 청춘의 사랑이여. 흰빛으로 순연한 세상, 밝게 빛나는 햇살을 품고 가장 아름다운 날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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