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우리 딸 결혼합니다. 축하해주세요. 라는 인사말과 함께 선남선녀의 웨딩사진이 첨부된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어린 소녀의 모습은 간데없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 환하게 웃고 있다. 든든한 신랑의 어깨에 기대어있는 모습은 천생연분의 화보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참 잘 자라주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신부의 엄마에게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웃으면서 전화를 받고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듯 훌쩍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현대판 콩쥐 팥쥐 엄마였다.

 사별을 하고 어린 딸과 둘이서 고생을 하고 지내다가 비슷한 처지의 지금의 남편과 새 인연을 맺었다. 각자 딸 하나씩을 키우다가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어려서는 어린대로 손이 많이 가야했고 커서는 커서대로 마음이 더 많이 가야하는 일이었다. 팥쥐 엄마였던 그녀는 본의 아니게 세상으로 부터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두 딸이 사춘기가 되어서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흔들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팥쥐 엄마라고 유머스럽게 얘기하며 사는 그녀의 웃음 뒤로 남모를 애환이 느껴지곤 했었다. 두 딸이 나란히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에 콩쥐가 더 좋은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그녀였다. 기도대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을 하고 좋은 신랑을 만나서 콩쥐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가슴으로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그녀에게 나는 아낌없는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꽃피는 봄 어느 날에는 콩쥐 친엄마의 제사를 정성들여 올리고 단풍 곱게 드는 가을 어느 날에는 팥쥐 친아버지의 제사를 넷이서 함께 올리고 살았다는 그 가족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명절이면 딸들과 함께 먼저 간 배우자들의 산소에 성묘를 다녔다고한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한 콩쥐와 팥쥐는 반듯하고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재혼가정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학계일부에서는 전래동화의 재해석이 필요하다고들 입을 모았었다. 새엄마는 무조건 무섭고 나쁜 엄마라는 스토리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나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현실적으로 헌신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는 재혼가정의 새 엄마도 많기 때문이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길목에서 어린천사들의 슬픈 비애를 뉴스로 접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순전히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불행한 생을 마감한 어린 영혼들 앞에서 이 사회와 어른들은 모두 죄인이어야 했다. 전래동화의 새엄마들이 환생이라도 한 듯 근간의 사건들이 의붓아버지와 새 엄마의 만행들이었다.

 사회의 원초적인 집단인 가정이 해체되고 파괴되는 현상이 많아진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다가 싫증이 나면 그만 두듯이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그 피해는 순전히 어린 천사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똑똑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은 필요하지가 않다. 가슴이 따뜻한 인성의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더 이상의 악마는 양성되지 않을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랑과 온유로 가정이 회복되고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