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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마중이향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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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5  1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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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수필가] 어느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아 낸 한 해였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지루하고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내야만 할 때 삶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누구는 한번뿐인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욜로(yolo)를 주장한다. 누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며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 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겠단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즐기며 살만큼의 경제나 정신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였으니 비우며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핑계를 대자면 아이들도 학업중이지만 노후를 책임져줄 기반도 다져지지 않았으니 정서적인 여유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쉼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족은 새해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아쉽게도 남편이 외유중이어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음악회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는데 큰아이가 서점을 추천한다. 망설일 것도 없이 길을 나섰다. 책이 있는 곳은 향기부터 다르다.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이 테이블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다.

 우리 아이들 키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세상을 구할 보검을 허리에 차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가도 서점 입구부터는 가르치지 않아도 걷는 자세부터 바뀌곤 했었다. 동화책이나 위인전도 즐겨 읽었지만 만화책을 들고는 놓지 않았었다. 제 허리에 찬 보검의 주인공이 표지에 그려져 있으면 그것은 우리집에 모셔 와야 할 운명의 책이 되는 것이다. 떼쓰는 모습조차 귀여워 한 두 번 타이르다가 사주곤 했었다.

 인문서적 앞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은 이미 만석인지라 통로에 서서 사람이 지날 때 마다 비켜주었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손에 들자 큰아이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받아 든다. 작은아이가 바구니를 들고 와서 담으며 제가 고른 책을 보여준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인지 꼭 사야 되는지 검증을 거쳐 다시 한 번 추려 낸다. 최소한의 것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열 세권이나 된다. 물론 금액도 만만치 않다. 망설이는 순간 큰아이가 카드를 내민다. 모아 둔 아르바이트비로 산단다. 만감이 교차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서점도 그렇다. 십 여 년 전 아이들과 다니던 서점은 대부분이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먹을거리나 생활용품점이 들어섰다. 하여 새해마중으로 찾았던 곳은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훗날 추억으로 돌아올 것이다. 책을 온 방에 펼쳐 놓는다. 욜로라는 것이 별것인가 자족하는 삶이지 싶다. 그리고 아직은 채워야 되는 것이 많은 나의 삶이다. 무술년(戊戌年)의 손을 잡는다. 행복한 일들을 더 많이 안겨 줄 것만 같은 따뜻함이 전해온다. 그 따뜻함은 올해도 열심히 살아내자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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