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대학교 교수, 교양학부 황혜영

최병수 작가는 10 년 전부터 국내외에 소개해 온 얼음조각 퍼포먼스를 올 여름 파리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아직 못 본 사람은 "여름에 얼음으로 조각해도 괜찮을까?" 하고 내심 염려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의 조각은 녹아도 된다, 아니, 녹아야 된다.

자신이 녹으면서 결코 녹게 내버려둬서는 안 될 얼음동포들의 존재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여느 작품들과 달리 작가의 손길로 펭귄들이 탄생하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막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펭귄의 몸은 녹기 시작한다.

녹아내리는 펭귄의 몸은 얼음이 녹아내리는 남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얼음펭귄은 인간이 자신들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동안 지구가 앓기 시작한 온난화병을 혼자 감당하듯, 온몸을 녹여 지구의 열을 식히고 있다.

최병수작가의 퍼포먼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자신의 작은 몸을 녹여 거대한 지구몸뚱이를 식혀주는 얼음펭귄의 모습은 마치 자기 몸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외로운 촛불을 닮았다.

얼음이 녹으면서 서 있던 펭귄은 형체도 잃고 쓰러지리라.

그는 얼음펭귄의 죽음은 곧 얼음 대륙의 죽음이자, 하나로 연결된 지구의 죽음임을 보여준다.

얼음펭귄 앞에 우리는 결코 구경꾼일 수없다.

지구가 녹아내리는 것을, 그 위에 발 딛고 서 있는 우리 몸이 상하지 않고 구경한다는 것이 어디 가능이나 하겠는가?얼음 덩어리에서 탄생하는 최병수의 펭귄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하지만 그것은 "달 없는 그믐/천 년 묵은 삼나무를/껴안는 폭풍" 과 같은 짧은 하이쿠가 일깨우는강렬한 <생태학적 상상력>처럼 우리의 영혼을 때린다.

단순한 형태에서 결코 우리의 시선이 머물다 지나치도록 놔두지 않는 강렬한 에너지가 나온다.

박기범씨 말처럼 작가가 세상에 대한 더듬이, 촉수 같은 것의 직관으로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 새겨두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도 국적을 초월한세계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녹아내리는 나침반 바늘이나, 물에 잠겨가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은 얼음펭귄과 함께 지구온난화를 경고하고 있다.

꿩먹고 알먹기

<빗물이 아니라 빛물이다>는 수도꼭지에 꽂힌 전구로 오늘날 소비문화가 고갈시키는 지하자원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꿩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다>라고 '생태계일동' 이 경고하고, 구름, 게, 황새 등의솟대도 인간들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에 무언의 시위를 한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설명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지나칠 만큼 충분한 말 못하는 자연의 대변인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에서 고상하게 관객의 발길을 기다리는 대신 삶의 현장으로나와 대중과 소통하고, 자연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나눈다.

그의 작품은 현실이자비전이며, 이상이자 실천이다. 게다가 예술이기까지 하니, 생태계 일동께 미안하지만, '꿩 먹고 알 먹기' 다.

에어컨 리모컨으로 점점 더 시원한 여름을 만드는 동안, 지구는 더 높은 고열로 신음한다.

얼음펭귄처럼 자기 몸을 녹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에어컨을 잠시 꺼두거나, 온도를 조금 높여두는 지구 사랑의 실천은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위도 추위도 말없이 인내하는 저 나무들처럼 식물성의 저항을 체험해보자.

작은 처방이 아직은 지구의 열병을 치유할수 있지만 머잖아 우리 몸을 녹여도 듣지않을지도 모르니.

지금, 펭귄이 우리 곁에 있을 때, 지구가 녹기 전에 …

-'병수는 광대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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