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온천지가 하얀 세상을 보니 내 마음에까지 눈이 내린 듯하다. 하얀 눈이 내리면 마음이 상쾌하고, 밟으며 걷노라니 저절로 즐거운 콧노래가 나온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입은 옷이 흰색 배냇저고리이다. 부부 관계를 맺는 의식에서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흰색은 무엇인가 시작할 때 순결하고 영원함의 끝이 없는 색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얀색은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슬그머니 일깨워주고 있다. 은퇴이후 온갖 사회학습을 거쳐 어르신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막 넘어섰다. 인생의 황금기를 어떻게 해야 멋진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건강한 삶이 으뜸가는 덕목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 새롭고 산뜻한 공기를 마시려고 새해 첫 주말 탐라국을 향해 날아간다. 한참 우주여행을 하다 은혜의 바다 건너 외딴섬에 착륙하니 눈꽃이 설렘을 달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 동안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밤새 음미하며 밝게 떠오를 해를 기다린다. 새로움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눈처럼 소리 없이 불어난다. 먼동이 트이며 보이는 대자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어 놓았다. 저보다 부지런한 선배들이 남기고 간 외로움의 조각들을 살얼음처럼 밟고 오른다. 하얀 눈송이 들은 빈 나뭇가지에 소복이 얹혔고 바위에도 살며시 앉아있다. 눈송이는 예쁘다 못해 찬란한 눈빛으로 기쁨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가끔은 미끄러지고 힘들어도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린 자체가 즐거운 영광이다. 벙어리 겨울나무 가지에 쌓인 온갖 아름다움이 현란한 빛으로 내 마음을 유혹한다. 어찌 보면 용감한 믿음과 의지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빛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슬픈 흔적을 모두 지우려고 하얀 눈을 깔아 놓은 듯하다. 꿈과 열정 그리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만 이구오세요! 주문하신 말씀대로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망하며 가볍게 오른다.

 올라 갈수록 하얀 솜사탕 같은 눈부신 설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얀 세상이 환상적으로 다가와 상고대위에 내려앉은 흰 눈이 운치를 더하고 있다. 간간이 착한 까마귀의 노래 가락이 능선을 흐르며 흥겨운 분위기를 돋운다. 몹시 맑고 쾌청한 해발 1950m의 한라산 하늘은 가을날 같은 행운의 여신이었다. 맛 선을 본 백록담은 각처의 젊은 등산객으로 온통 붐볐다. 모든 분들이 세찬 바람결에 가는 세월을 더듬고 오는 세월을 반가워한다.

 그동안의 고달픈 삶을 눈 속에 묻어 놓고 한 여생의 시작을 위해 팡파르를 울린다. 황금 개띠 무술년 나의 약속을 굳게 다짐한다. 눈길을 돌려 새로운 봄을 상상하며 개선장군처럼 당차게 내려온다. 인생의 내리막길 같지만 색다른 세상의 새 출발점이 되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문화와 산과 책을 여유 있게 즐기고 싶은 의욕도 의연히 솟아난다. 향기 나는 사랑과 은혜와 열정이 가득한 지혜의 꽃을 피워야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저 높은 설원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일마다 잘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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