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김정희 진지박물관 대표] 세종대왕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청주 초정리에 행차한지 12년이 되었다. 1444년 2월 28일. 세종은 거가(車駕)라고 기록된 연을 타고 왕비와 세자와 함께 처음으로 초정에 행차를 했다. 세종실록은 1444년(재위 26) 초수에 행궁을 짓고 같은 해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58일간, 그리고 같은 해 7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59일 등 총 117일간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안질을 치료하면서 한글창제 작업의 마무리를 했던 곳, 초정약수에는 세종대왕의 꿈과 뜻이 담겨 있다.

 얇은 비단천으로 몸을 감싸고 맵고 알싸한 초정약수 목욕물에 세종이 있다. 유모와 나이 많은 상궁이 시중을 들고, 오동나무 바가지와 큰 함지박, 조그만 물바가지, 놋대야, 의자, 무명수건이 놓여 있다. 바닥에 기름종이를 깔고, 팥으로 만든 비누를 칠하고, 초정약수 물이 그의 몸에 천천히 부어진다. 목욕을 마치고 무명으로 된 수건으로 몸을 닦고, 무릎까지 내려온 웃옷과 발끝을 덮는 하의를 입고 미소를 짓는 세종의 얼굴이 그려진다. 불현듯 이승소(李承召 1422~1484)와 안평대군의 싯귀가 떠오른다.

 "하늘과 땅이 서기(瑞氣)를 빚어 신령스런 샘이 나니 세조께서 이 해에 수레를 멈추었네 모든 풍류소리 임금 계신 곳에 들려옴을 맞이하고 다투어 고운 해가 해지는 곳에 목욕함을 우러러 보았도다." (이승소 "椒水" 중에서)

 "봄날에 깃발을 펄럭이며 남쪽 지방으로 행차하시니 눈에 비친 향기들이 높이 아래로 매달렸도다. 조물주는 또한 우리 성군(聖君)을 자랑하니 오늘날에 와 서원 땅에 좋은 샘이 솟아났도다." (안평대군 詩 중에서)

 15세기 즈음, 그 시대를 함께했던 그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450년경 전순의(全循義)가 기록한 『산가요록(山家要綠)』에는 230여 가지의 방대한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전순의는 조선시대 세종~세조 연간에 활약하던 어의이자 식품전문가이다. 양조(釀造)부분에 정확한 계량 단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장(醬)담그는 방법에서는 메주(말장, 未醬)의 정확한 제조법을 밝혀주고 장을 만드는 오래된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채소와 술, 식초지게미 등이나 밥을 혼합해 만든 김치류와 38가지 김치 조리법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지고 변화된 우리의 식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1765년)에는 청주 초정과 관련한 기록에 초정주(椒井酒)와 돼지고기와 내장을 함께 구운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15세기에 기록된 고기 구이요리로는 포계(炮鷄, 닭고기구이)가 있는데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살찐 닭 한 마리를 24~25개로 토막을 내어둔다. 기름을 넣고 그릇을 달군 후 고기를 넣고 손을 빠르게 움직여 뒤집어 볶는다. 청장과 참기름을 밀가루에 섞어 즙을 만들어 식초와 함께 낸다'

 600여 년 전 백성을 생각하고 한글창제라는 큰일을 마무리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던 그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소박한 소반 위에 닭고기구이 서너 점 올리고 톡 쏘는 맛의 초정주 한 잔을 마시며 세종, 그의 꿈을 그려 본다. 문화유산의 활용, 친근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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