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개헌논의에 불을 당긴 곳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회견 모두에 발표한 신년사 말미에 “30년이 지난 옛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국민주권 강화, 국민의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과 자치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문 대통령 자신이 대선 공약 사항 이행의지를 밝혔다. 기자들은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이 생각하는 권력구조, 지방분권 강화 등 구체적인 개헌안의 내용과 개헌 추진 일정에 대해 질문했다. 대통령은 국회 동의 과정을 거처야 하는 등의 여러가지 절차를 거론하며 모범답안을 읽는 수준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를 피해나갔으나 국회가 합의안을 발의하지 않을 경우 정부안을 내겠다, 지켜보는 시한은 3월까지, 4년 중임제 선호 등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했다. 특히 중앙 권력구조에 대한 합의가 어려우면 쉬운 부분부터 개헌하고, 그 다음으로 미루자는 이른바 단계적 개헌론까지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6월 지방선거를 기해 개헌안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회에서 신속하게 여야 합의안 도출을 촉구했지만, 기한 내에 나오기는 요원하다. 3월 중 국회 발의는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헌 문제는 대통령이나 여당이 국회에 시한을 던져주고 일정에 맞춰 안(案)을 내놓으라고 해서 척척 진행될 일은 아니다. 개헌안에 대해 여야간, 정파간, 이념 성향에 따라 사회 각계의 주장이 다 엇갈리기 때문에 합의 도출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국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한달 후인 지난 6월 여야 의원 35명으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구성해 자문위원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개헌특위 소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개헌안 내용을 논의해왔다. 개헌특위가 합의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난 연말 활동이 종료되면서도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비난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특위 자문위원단’이 개헌 권고안을 내놓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 권고안에는 현행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빠져 ‘사회민주주의(좌파 민주주의)’, 또는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도입도 가능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정리해고 금지와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내용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새해 인사차 방문한 자리에서 거론돼 뉴스를 탔다.

문 대통령이 ‘6월 개헌 추진’ 계획 발표한 후에도 여야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민주당이 “2월 내에 국민개헌안을 만들어 6월 개헌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국회 논의를 기다려 보겠다는 말은 수식어에 불과하다”며 “결국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밀어붙이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여야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국민이 원하는 개헌은 이뤄지기 어렵다. 국가 발전의 백년대계를 마련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