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새로운 시간들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설렘의 순간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어김없이 찾아온 무술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모든 소망을 다 이루고자 무리하게 계획은 세우기보다는 지난날을 한번 되짚어 보고 앞날의 소박한 바람을 꿈꾸면서 진정한 인간관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가슴에 와 닿는 일화가 있다. 옛날에 어느 부잣집에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해서 날만 새면 밖으로 나가 돈을 탕진하면서 친구들을 대접하느라 집안일은 소홀히 하며 부모를 돕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참다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혹시 너의 친구들이 너를 좋아하는 것은 너에게 받는 것에 재미를 들여서 그러는 것은 아니냐?"라고 묻자 아들은 "제 친구들은 모두 진실한 친구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진실한 친구관계를 확인하고자 그날 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거적에 쌌다. 그리고 아들에게 지게하고 맨 먼저 아들과 가장 친하다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아들이 친구에게 실수로 사람을 죽여서 시체를 가지고 왔는데 도와달라고 사정하자 그 친구는 그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일말에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아들과 아버지는 아들의 가까운 친구의 집을 연달아 찾아가 사정을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모두 다 냉정한 거절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 이번에는 내 친구를 찾아가 보기로 하자."고 말했다. 아들과 아버지는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하자 아버지의 친구는 두 사람을 집안으로 안내하고 조금 있으면 날이 밝아져 시체를 지금 옮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당분간 저 나무 밑에 내려놓고 아버지 친구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수습책을 함께 생각해 보자며 아버지의 친구는 거적에 쌓인 것을 번쩍 둘러메고 자기 집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껄껄 웃으면서 그 거적에 쌓인 것은 시체가 아니라 돼지고기임을 밝히며 그것을 안주삼아 날이 새도록 진정한 우정의 술을 마셨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명심보감에 "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는 글귀가 있다. 우리가 술 마시고 밥 먹을 때 호형호제할 수 있는 친구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과연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몇 명이나 있을까? 또한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많이 있으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할 문제다. 과연 나는 진정한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문득 물심양면으로 서로 도와주고 위로하며 나이를 떠나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 화가 구본웅과 '박제된 천재' 이상(본명 김해경)의 인간관계가 부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나이, 성별, 지위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 내가 가진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러한 사람을 만나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평생토록 나누고 싶다. 그리고 무술년 새해를 맞이해서 모든 이들에게 덕담 한마디 하고 싶다. 여러분! 올해에는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며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진정한 친구 하나쯤은 꼭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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