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 충북주민자치회장

[홍순철 충북주민자치회장] 우연히 어떤 짧은 글을 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야 온전한 하루가 됩니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늘 내 곁에 있어서 더러는 그 소중함이 무덤덤해지기도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지 싶었다. 가족, 가정, 식구. 그렇게 표현하는 그들은 나와 일상을 함께 하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서 애정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 보통 가족을 이루는 일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족이 있고, 결혼으로 인해 구성된 가족이 있고, 결혼으로 인해 편입된 가족이 있다. 이 모든 관계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결속력과 응집력을 갖게 된다.

 가족이란 정의와 의미를 쉽게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나를 지탱하게 하고 내 삶의 보루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면서도 가끔은 부모니까 형제니까 자식이니까 아내니까, 당연히 네가 나이고 내가 너라는 공식 속에서 끝없는 것을 요구하고 익숙해진 탓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존재의 고마움이 당연시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은 나의 영원한 은신처이고 안식처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겠지만 더러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무게감에 나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게 되는 존재라 생각하는 것도 어느 측면에서는 그럴만하지 싶다.

 그러나!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나, 가족에 대해 굳건함을 잃고는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가정을 이룬다는 게 단순하게 매일 보고 밥 먹고 들어오고 나가는 당연한 것들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하여 힘을 얻으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며 에너지의 근본과 삶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이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이기적인 정서가 팽배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이 사회를 구원하고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족의 참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인격을 소중히 하고 바른 인성과 너그러움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주는 가족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밝고 건강하고 활기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 <어거스트 러쉬>가 생각이 난다. 출생과 동시에 부모와 생이별한 아이가 11살이 되면서 부모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 남자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어느날 엄마 소리가 들린다며 그 소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뒤늦게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 또한 아이를 찾아다니게 된다. 음악천재인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큰 음악야유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심포니를 지휘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해야 했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는 그 한자리에서 만나게 됨으로써 엔딩이 된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 생사도 모르던 세 가족이 뭔지 모를 강한 이끌림에 의해 만나게 되며 만남과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는 그 가슴 찡한 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가족이란 어쩌면 그렇게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불가항력의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지금 내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다. 함께 밥을 먹고 내 고민과 행복을 들어주는 곁에 앉아 있는 그들이다. 설렘과 들뜬 감정이 아닌, 익숙하고 편안한 내 가족이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이다. 고맙고 사랑한다 말하자.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내 가족들에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