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아무리 유능한 사람에게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사방은 어둠속에 막혀 있고 아무리 둘러 봐야 가느다란 불빛조차 비치지 않는다. 몸부림쳐봐야 소용이 없고 소리쳐봐야 메아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참고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저쪽 어딘가에 반드시 햇살이 비치는 곳이 있으리라 믿고 그 길고 먼 터널을 빠져나갈 수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리어카를 끄는 겁니다." 쌍용그룹의 창업자 김성곤이 젊은 시절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할 때 유지(油脂) 공판장 사장이던 일본인 이시가와가 대구 서문시장의 도매상에게 같은 일본인 메이커의 세수 비누를 개당 11원에서 8원으로 끌어 내리게 하고 차액 3원을 자기가 부담하면서부터 김성곤이 경영하는 삼공비누가 전혀 팔리지 않게 되자 이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김성곤이 망했다는 소문이 나야 이 싸움이 끝난다면서 바로 그 도매상 주사장이 김성곤에게 권한 말이다.

 그 동안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던 "삼공비누"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김성곤은 일찍이 보성전문(지금의 고려대학교)을 나와 은행에 근무했던 젊은 엘리트요 그의 아내는 고녀(高女)를 나온 포항의 부잣집 귀한 딸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에게 시장 바닥에서 리어카를 끌라고 한 것이다. "…부인은 하루 종일 리어카에 비누를 싣고 서문시장 안으로 끌고 다니면서 삼공비누 사시오. 삼공비누 사시오 하고 외치면서 파는 겁니다. 그리고 김사장은 서문시장 안에 자리 잡고 노점을 차리시오." 그러면 저절로 김성곤이 망했다는 소문이 대구 장안에 쫙 퍼질 것이고 그렇게 끌어가노라면 비누 한 개당 3원씩 대주어야 하는 비용의 누적을 이시가와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김성곤 자신은 리어카 아니라 별 것이라도 끌 용의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마누라에게 리어카를 끌라고 한단 말인가. 설령 그렇게 해서 판다고 하더라도 과연 비누가 몇 장이나 팔려 공장에 산더미처럼 만들어 쌓아 놓은 그 많은 비누를 모두 팔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망설였다. 지금 집어치워도 먹고 살아갈 재산은 있다. 아니 이시가와에게 정면 대결, 삼공비누도 8원에 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말대로 그렇게 1년만 고생하시오. 그런 식으로 이시가와를 재워놓고 부지런히 속으로 돈을 버는 거요. 내가 파는 비누 값을 개당 12원으로 고수하는 한 삼공비누는 절대로 팔려요."

 주사장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다음날부터 김성곤은 리어카를 끌고 시장으로 나갔다. 도저히 그 짓만은 못하겠다던 그의 부인도 다른 리어카에 비누를 가득 싣고 시장 바닥을 누비며 "삼공비누 사세요. 삼공비누…"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계획은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김성곤은 그 암울했던 터널을 빠져 나왔고 비누 장사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 오늘날의 "쌍용"을 이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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