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라틴어 protrahere에서 기인한 selfportrait는 '(무엇인가를)끄집어내다', '발견하다', '밝히다'는 뜻을 가진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실체를 알고 싶다는 내면의 절대적 욕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윤동주는 우물 속에 비친 한 사나이의 모습을 통해 조국을 잃은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자기성찰을 노래했다.

 세간을 뒤흔드는 흉흉한 말들이 판을 친다. 갑질, 욕질, 청소년 폭력, 무시 등.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결과에는 기인하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기업 혹은 가진 자의 갑질, 청소년의 폭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소수의 무능한 리더 집단의 이기주의적 방임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린 무리들은 한 번도 내탓이요!라는 말을 뱉어본 적이 없다. 이 땅의 역사는 도도히 흐르고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려나지만, '국민이 주인이라고 외치던 무리'들이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성을 한 흔적은 동서고금에 찾기 어렵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무리조차도 '내탓'보다는 '네탓공방'으로 지새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인의예지의 도덕적 근본을 가지고 있다'고 설파하신 맹자의 성선설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대통령조차 '네탓'밖에 할 줄 모르는데, 오죽하면 내가 선택한 대통령을 내 손으로 권좌에서 내 몰기위해 엄동설한의 긴긴 시간을 광장에서 목 놓아 외쳤을까. 그 한 맺힌 통곡에 진정으로 귀 기울였다면 그 입에서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는 한 마디쯤 들을 자격이 있는 우리 국민들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다'는 전제가 있기에 우리는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섬긴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행위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그 도덕적 가치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인간은 부끄러움을 타는 유일한 동물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고 하신 고 신영복교수님의 고백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누군가는 그렇게 애타게 갈망했던 오늘이다. 무술년 새해에는 새로운 처음을 열어가는 초인(超人)을 갈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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