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지난 추석은 역대 가장 긴 연휴였다. 바지런한 며느리와 시어머니 덕에 필자는 큰 어려움 없이 명절 음식을 장만했다. 손자며느리의 빠른 손놀림에 시할머니의 칭찬은 끝이 없다. 무사히 추석명절을 보내고 딸과 며느리는 각자 시댁으로, 친정으로 모두 떠나고 필자도 느긋하게 친정을 찾았다. 원근 각지에 흩어져 사는 다른 형제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올 추석에도 우리 자매는 변함없이 엄마의 고구마 밭에서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먹을 만큼 자루를 채우고 청국장까지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남은 휴일이 며칠 더 남았다. 특별히 계획한 일도 없어 다시 친정집에 가서 농사일이나 거들어 주고 점심식사라도 함께할 양으로 다시 갔다. 들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에서 막내 동생이 엄마에게 "엄마 속 더 끓이지 말고 큰언니에게 말해" 한다. 그러자 엄마가 눈을 꿈뻑이면서 손사래를 치신다. 궁금해 뭔 일이냐고 묻자, 막내 동생 말이 추석 때 언니들이 주고 간 엄마의 용돈을 모두 도둑맞았단다. 연휴가 긴 탓에 은행을 가지 못하고 집에 보관하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단다.

 엄마에겐 큰돈이고 더구나 자식들이 준 용돈이니 그동안 얼마나 애를 끓이셨을까? 속 아파하는 엄마에게 "경찰에 신고하자"고 권해 받지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란다. 잃어버린 사람이 죄가 더 많다며 모두 당신 잘못이라고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하신다. 그 와중에도 보일러 수리비를 잃어버리기 전날 지불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시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손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시는 엄마인데 너무 허전하실 것 같아 엄마통장에 추석 때 드렸던 용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넣어 드렸다.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엄마가 안 계실 때 후회를 덜하지 싶어서다. 결국엔 엄마를 위함이 아니고 필자를 위함일 게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케가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 이참에 도둑맞은 돈은 못 찾더라도 주변에 경각심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일로 불안했던지 올케가 CCTV를 설치하자며 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해달란다. 발급받은 증명서를 들고 무심코 살펴보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 밑에 우리 일곱 남매의 이름이 순서대로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많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울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대문도 방문도 다 열어놓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어려운 살림이지만 두려움 없이 살았었다. 지금도 어릴 적 그 버릇으로 문을 잘 잠그지 않는다. CCTV를 설치하고 핸드폰으로 엄마가 생활하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어 마음은 편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 그지없다. 오고 가는 길손마저 반가움보다는 두려운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각박한 현실과 점점 늙어가는 고향 풍경이 무척 아리다. 머지않은 날에 내 고향 골목에도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아이들 웃는 소리가 넘쳐날 수 있을지… 가만히 CCTV 속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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