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춥다! 최강의 한파다. 옷깃을 여며도 옷깃사이로 스미는 바람이 온몸을 떨게 한다. 동장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날씨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얼굴 전체를 목도리로 두르고 거의 뛰다시피 빠르게 지나갔다. 상인들은 철통에 불을 피워서 손과 발을 녹였다. 물건을 풀지도 않고 물건을 사러 오는 이도 없다.

 어떻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날씨도 춥고 업무상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자고 시장을 가로질러 백반 집으로 향했다. 이 추위에 노점 상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몸과 마음의 추위를 다스리고 있는 걸까! 동장군 덕분에 하루쯤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 마음이 그조차 쉽게 허락을 하지 못하는 가보다. 산다는 일에 찹찹한 마음이 스며들 즈음, 때마침 점심상을 머리에 이고 나오던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얼른 다녀올 테니 들어가 있으란다.

 그는 혼자서 식사를 하는 이들에게 점심 배달을 해주고 있다. 젊어서 사별을 하고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자손들을 대학 까지 보내고 모두 잘되어 경제적으로도 든든하다고 한다. 연세도 일흔 후반인데 점심상을 머리에이고 배달을 한다. 일흔 후반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활달한 분이었다. 자손들이 그만 하라는데도 식당을 계속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일부러 그 맛을 찾아오는 이도 있고 주위에 혼자서 식사를 하는 노인들이 있다 보니 그만둘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은 건강도 받쳐주고 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이 이 추운 겨울에 따끈한 밥과 국 한 대접에 고마운 마음도 보내주고 해서 그만 두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한 끼 식사라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며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별거냐고 한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하루다. 누구든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으로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뒷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다.

 춥다고 잔뜩 웅크리고 동동 거리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그 분이 나누는 마음에 젖어들어 온 몸으로 온기가 퍼졌다. 세상은 사람도 많고 물질들도 풍성하다. 하지만 우리는 삶속에서 점점 각박해져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름의 환경에서 마음을 나누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분들이 있어 최강한파는 더 이상의 추위가 아니다. 내 마음부터 각박해지는 건 아닌지, 내 집 현관문을 열고나서면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혹독한 추위지만 따뜻한 마음을 퍼주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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