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겨울의 꽃인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였다. 구름이길 바랐으나 미세먼지와 황사라고 했다. 새해 들어 맑은 하늘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을 되짚어야 했는데 역대급 한파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습관처럼 찾아보는 미세먼지 농도는 덕분에 좋음, 혹은 보통 미만이었다. 여느 해 겨울보다 몹시 춥다. 마음으로 비롯된 체감인지 실제 기록이 더 추운지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두 자릿수의 영하권 날씨에 노후 수도관이 터지고 전기공급이 끊기고 필자의 집도 세탁실이 얼어 세탁물이 쌓여가니 서민에게 올겨울은 더 혹독하다.

 독감 정도는 남의 일로 알다가 내 일이 되어보고 난 후 신전인 내 몸을 함부로 했음을 자책했다. 무심히 본 하늘이 더욱 짙게 흐리던 날, 금세라도 눈이 올 것 같은 날, 그날은 여느 날의 같은 시간대보다 어두침침한 저녁 하늘이다. 그 하늘의 정체가 인근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였음을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정거장에서 맞닥뜨렸다. 필자가 사는 곳도 결코 나쁜 공기의 예외 지역은 아니었다. 회색 하늘은 비와 눈이다라는 촌스러운 연상도 그만해야 했다.

 아스콘 공장 가까이 사는 마을 주민들이 매우 아프다는 소식을 보고 난 후 정거장에서 보았던 그 하늘이 자주 거슬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시화되었던 문제지만 공장은 1987년, 주민은 2000년대에 터를 잡은 것이 발암물질을 마시고 살아야 하는 정당한 이유란다. 화마가 덮쳐 유독가스에 의해 죽어가는 국민이나 미세먼지와 발암물질 등의 나쁜 공기를 마시고 발병하여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국민이나 시간 차이뿐, 사지에 던져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알지 못하는 일. 알고도 대책 없는 일.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은 지난 세월, 누가, 무엇으로 우리를 책임져 줄 것인가.

 나라를 믿고, 정치인을 믿고, 사람을 믿고, 믿고 또 믿다가 불신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어제도 놀랐고 오늘도 놀랐다. 놀람은 내일도 연속될 것인가? 연속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모두 드러나야 한다. 5년 동안 국토를 파헤치듯 파서 오물을 거두어 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새 흙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쓸어 담잔다. 어물쩍 넘어가잔다. 왜 이리 시끄러우냐고 불만이다. 강 건너에 불이 났는가?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대충 넘어가길 바라는가? 요즘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

 2007년에는 BBK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분을, 2012년에는 대선 1주일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댓글 공작을 정당화한 분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현 정부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대통령은 대충 뽑으면서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헌법재판소장 등은 꽤 신중한 척 보였다.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혹여 생트집은 아닌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지 매의 눈으로 판단해야 했다.

 강한 빛 앞에서는 눈을 뜨지 못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는 더욱 어둡다. 눈 뜨고 도둑맞은 나날들, 헛되게 강한 빛 앞에 무력했던 눈을 매처럼 부릅떠야할 때이다. 물타기, 눈속임이 판을 치는 세상. 그러고 보니 중소기업 중앙회의 의뢰로 유럽 최대 규모라는 독일 자문업체가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과다계상의 롤랜드버거 보고서도 선 발표, 후 해명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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