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사회2부장

 

[박성진 사회2부장] 오래 전 일로 기억한다. 충북경찰청 직원들과 업무용 관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공적 업무 때문이었다. 당시 운전대에 부착돼 있던 스티커 문구를 보고 황당했다. '음주는 파면이다'라는 문구였다. 운전하던 경찰 공무원에게 불쑥 "이런 문구를 보면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씩 웃더니 돌아온 말이 기막혔다. "우리 조직이 이래요." 일순간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한참을 가서야, "조심하라는 뜻이겠죠"라는 자조적인 말에 어느 누구도 수긍하지 못했던 일이 떠오른다. 수년 전이지만 그 때는 그렇게 살벌했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으면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다소 직선적인 경고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섬뜩한 문구다. 스스로 경계하기보다는 지나침의 정도가 심해 반발만 살 수 있는 과도한 행정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넛지(nudge)'가 대유행이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2009년 발간된 책의 제목이다. 넛지는 조그만 환경 변화를 통해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과 유도를 뜻하는 것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아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을 80% 가량 감소시켰다는 통계가 넛지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유연한 개입을 말한다.

'음주는 파면이다'라는 문구는 강요의 의미가 강하다. 문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당신은 백수가 될 수 있다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과연 이 문구를 통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반감만 샀을 뿐 원하는 결과는 절대 얻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당시 이 문구를 보고 아무 말없이 그저 '씩 웃던' 그 경찰관의 마음도 이랬을 것이 뻔하다.

수년 전 충북경찰청에 '내 부모, 내 형제처럼'이라는 치안철학이 걸린 적이 있다. 경찰서를 찾아온 민원인의 업무가 '만약 내 부모, 내 형제의 일이라면 (경찰관은)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물음이었다. 하루에도 쉴새없이 밀려드는 민원에 지친 경찰관들에게 기계적인 친절을 강요하기보다는 업무를 대함에 있어 부모와 형제를 떠올리게 해 자연스럽게 배려를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다. 당시 일선에서는 이 문구가 떠오르면 스스로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경찰관들이 많았다.

이제 '음주는 파면이다'와 같은 무시무시한 문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거북하고 부담되는 문구가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다. 시대에 맞게 충북경찰도 넛지 정책을 발굴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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