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교향악단의 웅장한 연주가 새해의 희망찬 서막을 울린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한해의 시간들을 도닥여 주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귓가로 관현악의 힘찬 울림이 새해 새로운 시간과의 만남에 서곡으로 다가왔다. 브람스 이중협주곡은 새해를 맞이하는 나에게 "그래! 또다시 시작이야" 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웃해서 살고 있는 여동생들과 대학생인 조카들도 함께 신년음악회공연을 보았다. 평소에 가장 바쁘게 지내는 중에도 문화생활을 적극 즐기는 둘째 여동생의 배려였다. 티켓을 예매해두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서 감동을 주었다. 우리 자매들 셋이서는 함께 공연을 보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지만 조카들과는 처음이었다. 조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내심 함께 신년의 자리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같다. 멋진 청년으로 장성한 조카들과 나란히 앉아서 공연을 보는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음악이 주는 환희를 한껏 즐겼다.

 대중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조카들이 혹여 지루해하고 이모들과의 동행을 후회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음악회 내내 눈치를 살폈다. 공연이 끝난 후 맛있는 닭발집에서의 달콤한 뒤풀이 약속을 했었다. 조카들은 의외로 음악회에 감동을 받으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브람스의 교향곡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듯하였다. 대중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보다는 가사의 언어로 전달되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도 한다. 함께 뛰고 소리 지르는 콘서트가 아닌 클래식 음악회의 품격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조카들의 모습이 대견해보인다.

 오천 원의 행복이다. 단돈 오천 원으로 교향악단의 브람스 협주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지역사회에 감사해야하고 일상의 최고의 행복이다. 월초가 되면 예술의 전당 월간 공연 일정표를 살펴보고 좋은 공연 일정을 메모해둔다.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국악단과 시립무용단의 수준 높은 공연들을 누리며 산다. 일 만원으로 로얄석의 호사도 누려본다. 오천 원 티켓 A석을 여러 장 구입해서 좋아하는 지인들과 공연 데이트를 즐긴다. 비싼 요리를 대접 받은 것보다 더 많이 행복해하면서 두고두고 그 감동을 얘기들 한다. 공연 데이트는 쓸데없는 수다를 떨지 않아도 되니 좋다. 함께 공유하는 시간만으로도 좋은 만남이 된다.

 신년음악회를 마친 늦은 저녁 함박눈이 내린다. 함박눈송이가 음표처럼 차창에 내려앉는다. 우리는 맛있는 닭발집으로 향했다. 나는 조카들에게 브람스를 안주삼아 얘기해줬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가 친구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으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었다. 당대의 유명한 가수였던 요하임 아내와의 사이를 의심하게 되면서 관계가 소원해 졌었다. 음악적으로는 대단한 동지였던 두 사람은 오늘 우리가 감상했던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을 함께 협연하면서 화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화해의 협주곡이라고도 한다. 조카들과의 담소로 겨울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음악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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