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석가모니 부처님께옵서는 "지장보살 본원경" 촉루인천품(囑累人天品)을 통하여 지장보살을 다음과 같이 찬탄하셨다. "지장, 지장이여! 그대의 신력(神力)은 불가사의하도다. 그대의 자비(慈悲)는 불가사의 하도다. 그대의 지혜(智慧)는 불가사의 하도다. 그대의 변재(辯才)는 불가사의 하도다. 사방(十方)의 모든 부처님이 천만겁 동안 찬탄할지라도 그대의 불가사의한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의 지혜와 자비뿐만이 아니라 신통력과 방편의 능력인 변재까지도 불가사의하다고 하셨다.

 불가사의(不可思議)! 우리의 생각으로는 가히 측량을 하거나 헤아려 볼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공덕을 갖추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장보살께서는 갖고 계신 그 불가사의한 공덕을 조금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모두를 중생의 안락(安樂)을 위해서만 사용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지장보살의 무한한 신통력과 자비와 변재의 공덕은 오직 사바세계의 중생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들 중생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우리들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남을 위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와 행복의 삶을 얻기보다는 "나"의 굴레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중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야말로 악한 씨를 심으면 고(苦)의 과보를 받고 선한 씨를 심으면 낙(樂)의 열매를 거둘 뿐 그 이상의 삶을 이루지 못한다. 한량없는 과거의 생애를 살아오면서 몸과 말과 뜻으로 지어 온 바를 따라 순간순간 현재와 같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업보중생(業報衆生)"이라고 하셨다. 지은 바 업에 따라 윤회를 하고 지은바 업에 의해 행복과 불행을 맞이하게 되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결코 인과응보의 현실, 정해진 업을 면하기 어렵다는 "정업난면(定業難免)"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업덩이"같은 존재가 업보중생인 것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이름 아래서는 "정업난면의 업보중생설"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벼운 잘못은 물론이요 중생의 가장 무거운 죄업이 만들어낸 지옥조차도 지장보살의 자비와 신력 앞에서는 없어져 버린다.

 곧 업보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향하면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고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면 모든 업이 지장보살의 크나큰 본원력(本願力)에 의해 녹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왜? 지장보살의 근본 서원이 끝없는 용서요.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의 끝없는 용서와 끝없는 사랑! 이를 직접 증명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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