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 변호사

[오원근 변호사] 현직 여검사인 서지현 씨의 성추행 피해 폭로가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이것이 전에 없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먼저 피해의 당사자가 여검사라는 사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검사도 조직 내에서 성추행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파문이 커지는 또 다른 이유는, 서검사가 검찰 내 게시판에 실명을 사용하여 폭로하고, 나아가 방송에서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까지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검사는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던 안태근이, 많은 검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상당 시간 쓰다듬었다고 했다. 서검사는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아무리 밀어내도 떠오르는 그놈의 그 눈빛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시로 가슴이 조여 오고, 누웠다가 발딱발딱 일어나고, 피가 발바닥에서부터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이게 바로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구나… 비유적인 표현인 줄만 알았더니…"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씨는 검찰국장 때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의 돈봉투 사건으로 옷을 벗은 사람이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오래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다"고 했다. 서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당시 검찰국장이던 최교일 현재 국회의원이 이를 덮었다고 했다. 최의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으나, 당시 법무부에서 근무하던 임은정 검사는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냐'고 호통을 친 사람이 최교일 의원이 맞다"고 밝히고 있다.

 궁금증은 서검사가 7년도 더 지난 사건을 왜 이제, 공개적으로 폭로했을까 하는 것이다. 7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받은 충격이 지금까지 여전하고, 안태근이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검찰국장이라는 요직에 오르고, 검찰 조직은 진상을 덮으려고만 하였던 것에 대한 반감이 기본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서검사가 검찰 조직 등 우리사회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용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

 서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미투(me too)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정 의원이 검사장 출신 로펌 대표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임은정 검사도 오래 전 부장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고 그 일로 그 부장이 사표를 냈다고 했다.

 성범죄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구조 안에서 일어난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는 왕조시대의 계급사회에 이어 일제 식민지, 전쟁, 독재를 거치면서 뿌리 깊게 형성된 것으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민족해방과 사회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 사회변혁을 위해 이번에 용기를 낸 서검사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조금씩 해체되어 간다고 본다. 서검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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