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조선시대 혁신 리더십의 주역으로 태종·세종·영조·정조 등 네 군주와 정도전·이어·유성룡·김육·최명길·채제공·정약용 등 일곱 관료를 꼽는다. 이 가운데 리더십이 '비전가'로 분류된 정약용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급관리 부패가 만연한 조선 후기, 정약용은 문벌과 연고를 우선한 관리 선발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인사고과 실시와 수령의 임기보장을 내세웠다. 관료 시스템의 개혁을 제시한 것이다. 제도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인사 탕평의 개혁정치를 추진한 영조, "백성의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정치의 목표"라며 임진왜란 후 피폐해진 민생과 국가재정의 복구를 위해 조세제도를 개혁한 김육에 대해 리더십으로 손색이 없음을 인정받았다.

 근래 들어 역대 정부 때마다 혁신이 화두가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은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 실천력이 문제였다. 새 정부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구호나 수사로 치부하는 것은 해보나 마나다. 실체 있는 혁신이 되려면 먼저 경과를 냉철히 따져보는 게 순서다. 적폐청산과 같은 단어로 모호하게 포장한 건 아닌지, 혁신을 오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물론 대통령 자신이 나라를 꾸려나가는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급관리들의 혁신 자세가 더 절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을 정색하고 비판했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청했을 만큼 일자리 문제 해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는데도 청년실업률을 비롯해 고용지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이 혁신 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공직사회에 직접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하급관리에 강경해진 발언은 국정이 뜻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어 공직사회의 기강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공직사회에 대한 대통령의 불신은 공무원들이 자초한 측면이 많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놓는 정책마다 엇박자에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빗발지고 있다. 대충 꼽아도 가상화폐 관리, 영어교육 폐지 등 수두룩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기금 문제도 그렇다.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들이 걸러지지 않고 확정되는 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때문에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실제로 적폐가 확인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공직사회 전체를 도매금으로 적폐·개혁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도 문제다. 갑갑하다. 모든 일을 대통령이 일일이 챙길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럴거면 총리와 부총리, 장관들이 왜 뒀을까. 장·차관은 거드름 대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무원들과 공유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들을 입안하고 책임지고 시행하라는 자리다. 대외 소통 못지않게 부처 내 소통도 그래서 중요한 이유다.

 '책임 행정'과 '신상필벌'만 제대로 지켜져도 공직사회는 달라질 수 있다. 무턱대고 드라이브만 거는 게 리더십은 아니다. 공무원이 먼저 자세를 바뀌어야한다. 청산해야할 적폐 대상이 무슨 의욕을 갖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는가. 과감하게 칼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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