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사람은 시끄러운 시장통에서도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쩌면 남들은 다 보고 있음에도 본인만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주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까닭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는 첫째로, 사람의 출산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장 출산(出産)이라는 용어부터 사용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사람의 사고의 틀을 고정시키는 단점이 있다.

 '출산(出産)'이라는 한자는 아이를 낳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 숨을 이어가고, 양육받고, 교육받고, 직업을 갖고, 사랑을 나누고, 엄마와 아빠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가는 일생을 함께 지원하는 세대별 맞춤형 대응책을 고안해야 한다. 출생시기에만 초점을 맞춘 지금의 지원책으로는 결혼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 생명을 잉태하게 하기에는 매력적일 수 없다. 근로여력이 가장 높은 대도시의 평균 출생률이 가장 낮다고 하는 것이 이를 잘 방증해준다. 양육 시기별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認識)은 대상을 알아가는 작업이며, 객관적 실재의 의식으로부터의 반영이다. 객관적 실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조된 대책은 지난 10년간의 실패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두 번째 인식 전환의 초점은 출생률 저하의 문제점이 국가만의 문제, 노동력만의 문제,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는 자각(自覺)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의 대정부 저출산 문제에서 가장 방임자의 역할을 했던 곳은 다름 아닌 기업이다. 기업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으로 양육해 낸 양질의 노동력을 손쉽게 가져갈 뿐,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거의 방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출생률 저하의 가장 큰 방관자였던 기업에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2010년부터 "아동수당 거출금"을 제도화했다. 2005년 1.26명까지 떨어졌던 일본은 2016년 1.44명으로 매년 미세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단기적인 지원책 이외에 삶의 주기별 양육에 관한 각종 제도와 법률, 이를 지원할 예산은 물론 국민과 기업,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준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무차별적인 산업발전 시대에 효과적이었던 단기부양책이 삶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오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불가구약(不可救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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