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윤 변호사

[정세윤 변호사] 서울고등법원(2심)은 지난 2월 5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화장에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앞서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등 협의로 구속기소 되면서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를 대부분 무죄로 판단하면서 삼성이 최순실에게 송금한 36억에 한정하여 뇌물죄를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 선고에 대하여 삼성의 한 관계자조차도 "감형까지는 기대했어도 솔직히 석방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털어놓을 만큼 이 부회장의 석방 소식은 파격적이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재판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재판 결과를 놓고 특검과 변호인단은 물론 일반 국민들 간에도 뒷말이 무성하다. 판사를 감찰해야 한다는 민원도 쇄도하고 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유전무죄를 외치며 분노하는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은 여전히 그 후폭풍으로 남아있다. 판결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찰을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20만 명 서명을 달성해 청와대 측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이러한 분노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아마도 항소심이 원심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과거 선례에 비추어 36억 원의 뇌물을 인정하였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번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예로 재판부는 지난해 4월 한 마트에 침입해 진열대에 있던 라면 24개(1만 6천 원)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러한 판결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서민은 라면 몇 개 훔쳐도 감옥 가는데 재벌은 더 큰 죄를 저질러도 석방되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법조인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번 판결은 양형기준에 크게 벗어나 납득하기 어렵다. 뇌물공여의 양형기준을 보면, 1억 원 이상인 경우 감경할 경우 2년~3년, 기본은 2년 6월~3년 6월, 가중될 경우에는 3년~5년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무에서는 뇌물공여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실형을 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에도 항소심이 인정한 뇌물공여액 36억 원은 라면 값 1만 6천 원의 225,000배이고 위 양형기준 1억 원의 36배이므로, 도저히 집행유예 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됨은 명백해 보인다. 여기에 재벌의 노블리제 오블리제라는 도적적 의무와 책임을 더한다면 더더욱 이번 판결은 정의롭지 못한 판결임이 틀림없다. 역설적으로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뇌물공여에 관한 양형기준으로 새롭게 창설한 셈이 되어버렸으므로, 앞으로 뇌물공여액이 36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집행유예를 선고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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