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설을 하루 앞두고 대형병원 간호사 박 모(27)가 병원 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투신 자살한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1일 숨진 간호사의 유족과 남자친구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미리 당부하건대 심각한 인권 유린, 개인의 자존과 인격을 말살하는 악질적인 병원내 조직 문화에 대해 국민들이 공분을 사고 있는 사건인만큼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정확한 진상을 밝혀내고, 관련자들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 희생자 박씨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흔하게 행해지는 ‘태움’이라는 집단 가혹행위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일을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 용어다. 간호사 사회의 ‘태움 문화’는 일반인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악습이다.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다 견디지 못하고 나온 간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배 간호사가 새로 들어온 신입 간호사에게 일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온갖 갑질을 자행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운다”는 태움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신입 간호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선배 간호사들은 일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작은 실수를 빌미로 폭언은 예사이고 폭행, 집단 따돌림까지 예사로 자행한다.

태움 문화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에 전남대학병원에서 2명의 간호사가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일상화된 폭언과 비인격적 대우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당시 간호사들의  문제를 다루는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태움’이라는 용어가 등장해 세상에 알려졌다.
힘든 간호사 공부를 마치고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사회에 진출한 신입 간호사들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아넣은 태움 문화는 10여년이 지났어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또 다른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물론, 병원 당국, 나아가 의료계가 악습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태움 문화는 그 때 뿌리를 뽑혔을 것이고, 박씨와 같은 새로운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들은 “병원은 인명을 다루는 곳이고, 조그만 실수가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다소 폭력적인 교육시스템은 불가피하다”고 합리화 하기 일쑤다. 의사들의 수련 과정인 인턴·레지던트 교육과정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폭행과 인권유린이 숱하게 드러났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외면, 희생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늘 교육상 어쩔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해왔기 때문이다.

관행상 존재해온 조직문화라는 식으로 덮어둘 일이 아니다. 의료인들이 입으로는 늘 인명을 중시한다면서 간호사, 의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젊은 생명들은 왜 존중하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수사기관들이 집단적 가혹행위들이 횡행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엄연히 직무유기다. 전근대적인 교육 방식이 결국은 입원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 기회에 병원내 폭력문화를 뿌리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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