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대학교에 입학하고 만난 친구 중에 맛있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많이 아는 친구가 있었다. 학생이라 넉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친구가  안내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갔던 레스토랑은 저녁식사의 사분의 일 가격으로 평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는데, 바닷가재와 스테이크가 같이 나오는 곳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로맨스 그레이의 신사분이 너무나 예의를 갖추어 서빙을 해주며,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모든 인테리어는 오래된 앤틱으로 꾸며지고,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정말 대화를 즐기고, 음악을 좋아하고, 삶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갈 때마다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맛 볼 수 있는 점심특선을 시키지만, 턱시도를 깔끔하게 입으신 신사 분은 조용히 웃으시며 메뉴를 주시고 우리의 주문을 기다려주셨다. 애피타이저, 스프, 샐러드, 메인메뉴 그리고 디저트까지 정성껏 나오는 음식은 행복하게 만들었다. 편안한 식당에서 따뜻함과 교양이 느껴지는 서비스로 대접받고, 친구와 나누는 주제를 넘나드는 대화를 나누며 삶과 매너를 배웠다.

 안타깝게도 그 레스토랑은 모던한 인테리어와 젊은 감각을 앞세운 레스토랑들에 밀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뒤 문을 닫았고,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는 결혼과 함께 호주로 떠난 지 오래이다. 요즘은 어떤 레스토랑을 가도 그 때 느꼈던 그 감동을 주는 곳이 없는 것이 아쉽다.

 핸드폰을 바꾸는 대신 그림을 사거나,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할 가격을 비교하며, 이거면 집에서 고기를 몇 번을 먹는다거나 꽃다발을 주는 사람에게 돈으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잠시만 멈추어 보자.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이러한 마음들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게다가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소비되느냐로 규정되어지는 통에 매우 피곤하다. 게다가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면 쪼개어 집도 사고 자녀교육도 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소비주체로서 내 삶을 경영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소유가 존재를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작은 저항이하나마, 대중매체와 상업주의가 부채질하는 소비가 아니라, 돈이 좀 들더라도 내 존재를 위한 소비를 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젊어지는 동안피부를 위한 크림 대신 책을 한 권 사거나, 내 아이를 위한 학원비 대신 가족을 위한 여행을 위해 쓴다던가, 과일 한 상자 대신 거실에 걸어놓을 그림이라도 말이다. 우리의 이런 시도에 경제의 기득권을 지닌 기업과 자본의 주체들이 어리둥절하도록 말이다. 오늘 이 오후, 20살의 내가 취업에 필요한 학원비 대신 멋진 레스토랑에 가서 친구와 나누었던 열정과 신념을 기억하며, 고급스러운 케이크를 사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70대 우리 어머니를 초대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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